블록체인 1G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필요성 더 부각"
"루나 가치 회복 거의 불가능할 듯"

테라./연합뉴스
테라./연합뉴스

"전화위복(轉禍爲福)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 1세대인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를 17일 여성경제신문이 만났다. 그는 루나 사태를 보며 "명백하게 실패한 프로젝트"라며 "다만 블록체인 생태계를 위해 철저히 분석하고,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대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이자를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시장을 휩쓸었던 루나 코인은 이틀 만에 99% 하락하며 사실상 실패했다.

크립토 업계는 UST와 루나의 폭락으로 약 58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것으로 봤다.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 테더도 디페깅(고정 해제)이 발생했고 비트코인도 1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용어 설명 : 스테이블 코인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 미국 달러나 유로화 등 법정화폐와 1 대 1로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데, 보통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다. 테더(Tether,USDT) 코인이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이며 이 외에도 HUSD, PAX, GUSD, USDC 등의 다양한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됐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루나를 상장 폐지한다고 했다. 업비트와 고팍스, 빗썸, 빗썸 등 국내 거래소도 거래 지원 종료 계획을 밝혔다. 

루나를 설계한 테라폼랩스코리아 권도형 대표는 "모두에게 고통을 끼쳐 마음이 아프다"며 트위터를 통해 실패를 인정했다. 루나 상장 폐지 후 미국 달러를 기반으로 한 USDC의 코인 유통량이 급증했다. USDC의 시가총액은 65조32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짧은 시간에 크립토 시장을 휩쓸고 간 '루나 사태'. 본지가 정 대표를 직접 만나 쟁점을 짚어봤다. 정 대표는 여성경제신문에 [정우현의 코인세상 뒤집어보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루나·테라 급락 사태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여러 가지 원인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테라의 스테이블 토큰인 UST의 달러 페깅 메커니즘의 불안정성과 과도한 스테이킹 리워드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당 취약점을 간파하고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 의도적인 공격을 시도한 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장치와 위기 대응 준비가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취약점이 있더라도 잘 발현이 안 되지만, 올해 암호화폐 시장 전반적으로 가격이 하락한 상황도 이번 사태의 간접적 배경이 된 것으로 본다."

용어 설명 : 페깅(pegging)

'못을 박아서 고정시킨다'라는 뜻. 암호화폐의 가격이 마치 못을 박아놓은 듯이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됐다는 의미다. 

용어 설명 : 스테이킹

자신이 보유한 암호화폐의 일정한 양을 지분으로 고정시키는 것.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호화폐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예치한 뒤, 해당 플랫폼의 운영 및 검증에 참여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것이다.

테라는 시가총액 383억 달러. 한화로 49조원. 글로벌 코인 순위 6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네이버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규모다. 그런데 단 이틀 만에 테라 가격 추이는 곤두박질쳤다. /코인마켑캡
테라는 시가총액 383억 달러. 한화로 49조원. 글로벌 코인 순위 6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네이버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규모다. 그런데 단 이틀 만에 테라 가격 추이는 곤두박질쳤다. /코인마켑캡

—이번 사태로 인해 블록체인의 근본적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스테이블 코인도 이번 하락장에서 잘 버텨냈다. 달러 페깅 메커니즘(사물의 작용 원리 및 구조)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이더리움을 담보해서 발행하는 'DAI코인' 같은 스테이블 코인은 여러 차례의 암호화폐 급락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깅이 잘 유지되고 있다. 달러를 직접 1:1로 예치하고 이를 담보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더리움이나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암호화폐 자체의 가격 변동성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므로, 높은 비율의 '과담보(1 대 1보다 더 높은 비율의 담보)'를 요구한다.

1달러어치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기 위해 1.6달러의 이더리움을 예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더리움 가격이 하락해도 담보를 청산해서 발행된 스테이블 코인의 페깅을 유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50% 이상 가격이 순간적으로 급락하면 자동 청산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담보 자산에 한 종류의 코인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가격 안정성이 높은 다종의 코인을 담보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의 과담보 크립토 자산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자본효율성이 떨어진다. 1달러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기 위해 1.6달러 이상의 자산이 예치되어 있어야 하므로 실제 활용되는 금액에 비해 잠기게 되는 자본 규모가 크다. 테라 UST와 같은 알고리즘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은 저조한 자본 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 과담보를 요구하는 대신 UST를 사고파는 차익거래를 기반으로 해서 페깅을 유도하자는 아이디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17일(한국시간) "권씨가 테라를 없애고 새로운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구축해 기존의 블록체인을 되살리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권씨는 블록체인 포럼에 "(테라의) 블록체인 코드를 복사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기존 네트워크의 거래 주문용 컴퓨터 소유자, 테라 보유자 같은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토큰을 배포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테라 홈페이지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17일(한국시간) "권씨가 테라를 없애고 새로운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구축해 기존의 블록체인을 되살리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권씨는 블록체인 포럼에 "(테라의) 블록체인 코드를 복사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기존 네트워크의 거래 주문용 컴퓨터 소유자, 테라 보유자 같은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토큰을 배포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테라 홈페이지

만일 UST가 1달러가 아니라 0.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면, UST를 0.8달러에 사서 테라의 루나 코인과 교환해 1달러만큼의 루나 코인을 발행해 준다. 루나 코인을 1달러에 팔면 상당한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반복하면 수익이 계속 늘어나지만, 그만큼 UST가 시장에서 없어지기 때문에 다시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따라 1달러에 페깅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루나의 가치가 버텨줘야 하는데 UST가 페깅이 안 되면, 루나의 발행량은 계속 증가하게 되고 루나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루나 가격과 UST 가격이 모두 동시에 계속 하락하는 순환 하락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안일하게 대처를 한 것이라고 본다. 폭등한 루나 가격 덕분에 8만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사들여 루나의 가치 방어에 쓰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 규모로는 늘어난 UST 물량과 루나의 가격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중앙화된 운영구조와 불투명한 자산 운용 과정도 시장의 신뢰를 무너트린 요인 중의 하나였다."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루나의 가치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너무 많은 양이 단기간에 발행됐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다만 테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모여든 바로 커뮤니티 참여자와 개발팀들은 여전히 있다. 기존 재단을 중심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지만, 커뮤니티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로드맵을 설정하고 기존 체인을 포크해서 재출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UST 스테이블 코인의 메커니즘이 유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모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지금은 다수 선의의 소규모 투자자들을 구제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알고리즘만으로 가치 유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권도형 대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고발 조치됐다. 

"루나와 UST 스테이킹에 대한 보상의 근거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권도형 대표의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앞으로 상당한 분쟁과 논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각국의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규제를 정당화하기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중앙화된 운영과 거버넌스가 더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탈중앙화 프로젝트에 대해 과도한 중앙화된 규제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되는 점이다."  

16일 오전 서울 성동경찰서로 인터넷방송 BJ A씨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A씨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 자택에 찾아가 주거침입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성동경찰서로 인터넷방송 BJ A씨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A씨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 자택에 찾아가 주거침입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비트코이너(비트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루나 사태가 지나친 중앙화 또는 잘못된 리더십으로 인한 자업자득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비트코이너들이라고 특정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더리움 킬러라고 광고하는 프로젝트를 봐왔다. 하지만 대부분 속도와 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탈중앙성의 원칙을 훼손하는 경우였다. 단기간에 인기를 끌고 급상승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중앙화된 운영에서 비롯되는 불투명성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약속한 결과를 실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 사태가 다른 코인의 신뢰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블록체인은 신뢰라는 바위에 지어진 탑인데, 의심이 생겨나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 제언 부탁드린다.

"신뢰는 특정 개인이나 개발팀에 대한 것이 아니다. 'Trustless trust.' 즉 신뢰할 필요 없는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탈중앙화된 원칙에 따라 모든 과정이 공개되고 집단으로 검증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번 사태가 단기적으로는 악재이지만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방향이나 발전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많은 개발팀이 실망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개발에 전념하고 커뮤니티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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