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매파경제학자 추천했다 봉변
장제원 "협의 없었다" 주장 거짓말 규정
진중권 "좋다 할땐 언제고 왜 문제 삼나"

서울 종로구 한국은행 본사 입구 전경. /여성경제신문DB
서울 종로구 한국은행 본사 입구 전경. /여성경제신문DB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당선인의 정책 코드가 일치하는 학계 인사를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 거꾸로 화를 불렀다. 윤 당선인이 평소 강조해온 친시장 정책에 맞춘 인선인데도 일부 인사가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감정 싸움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4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전일 이주열 한은 총재 후임으로 이창용 서울대 교수를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주열 총재 임기가 이달 끝나기 때문에 국회 동의를 받기 위해선 문 대통령의 지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청와대 관계자가 "당선인측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윤 당선인측은 대변인실 공지를 통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가 없다"고 즉각 부인했다. 경제 전문가 기용에 대한 구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 한은 총재 인선을 미리 결정해 청와대 측에 전달한 바 없다는 설명이다. 또 청와대가 연락 창구로 지목한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협의사실마저 부인하면서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장 실장과 협의를 진행해왔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확인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 보고 후 공식 발표에 앞서 전화를 걸어 먼저 내용을 알리자 장 실장이 "(한은 총재로 지명할) 사람이 바뀌었다"며 "다른 인사와 패키지로 해야지 왜 따로 발표를 하느냐는 등의 3가지를 섞어서 말했다"는 등 돌연 태세를 바꿨다는 설명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연합뉴스

다시 말해 청와대는 협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장 실장의 얘기는 '거짓말'이라는 주장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진실공방을 할 생각이 전혀 없으나 계속 그렇게 하면 (그동안 오간 이야기를) 다 공개하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장제원 실장이 "정식으로 당선인에게 추천을 요청하고, (당선인이) 수락해 추천하는 방식의 상호 협의나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한 것을 미뤄보면 윤 당선인이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모르는 사이 인선 논의가 진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윤 당선인과 정책성향이 일치하는 인사를 낙점했다는 점이 오히려 불을 지폈다. 이창용 교수는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 경제1분과 소속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함께 한은총재 후보로 언론 하마평에 꾸준하게 올랐던 인물인데 자타가 공인하는 매파 경제학자다. 청와대가 '선물'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지명자는 1960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로체스터대학 조교수, 세계은행 객원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8~2009년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2014년 한국인 최초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에 올랐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그는 금리인상에 있어선 신중론자다. 다만 금리를 인상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금융통화정책을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어서 '합리적 매파'로 통용된다. "중앙은행을 통해 국채를 매입하면 유동성 증가로 인플레이션 및 부동산 가격 상승, 환율 평가절하 등 다른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해온 점도 윤석열 당선인 정책 노선과 일치한다.

또 다른 강점은 해외 주요 경제기관 경험이 있어 국제적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이주열 현 한은 총재 역시 "(이 지명자가) 학식과 정책 운영 경험, 국제 네트워크 등 여러 면에서 워낙 출중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보다 뛰어난 분이기 때문에 제가 조언할 부분은 따로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은 총재는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인사청문회 등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4년이며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특히 이번 한은 총재는 물가를 잡되 경기는 침체시키지 않도록 금리 인상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난제를 앞두고 있다.

한은 총재 지명은 임기가 5월까지 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권한이다. 이렇다보니 장제원 실장의 과잉 반응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본인이 좋은 사람 같다고 했고, 또 윤 당선자 쪽과 직접 전화해서 의사까지 확인한 게 맞는다면 문제 삼을 일 아니지 않나. 장 비서실장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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