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화장실 30%, '쭈그려 앉는' 동양식 변기

"우리 같은 노인은 화장실 이용하기도 쉽지 않네요."
80대 노인 김모 씨는 지난 6일 서울지하철 5·6호선 공덕역 공공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 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서양식 변기 칸이 다 차 어쩔 수 없이 쭈그리고 앉아서 용변을 봐야 하는 동양식 변기를 이용하면서 관절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다. 김씨는 화장실을 나와서도 수십분간 화장실 앞에 앉아 움직이지 못했다고 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에 위치한 공공화장실 변기 중 성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동양식 변기 설치 비율은 30% 정도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용산역 화장실에서 한 시민은 급하게 화장실 칸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해당 칸 문을 열어보니 동양식 변기였다. 기자가 '급해 보이는데 왜 이용하지 않냐'고 묻자 시민은 "(동양식 변기는) 불편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며 "참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서 사용하는 좌변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서양식 변기가 좋은 것이고, 동양식 변기가 나쁘다는 시선은 맞지 않다. 동양식 변기 또한 위생 문제 등을 이유로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15년 3137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변기 종류'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2.8%가 동양식 변기를, 68.3%는 서양식 변기를 선호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응답자는 8.8%였다. 동양식 변기를 선호한 응답자의 86.7%는 '더 위생적'이라는 이유를 꼽았다.
그러나 화장실에 줄이 길어도 동양식 변기 쪽은 비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 목격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지하철 공공화장실 동·서양식 변기 비율이 적당하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특히 노인이 많이 이용하는 역내 공공화장실 특성을 고려해 이용이 편리한 서양식 변기의 비율을 높여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가 2018년 65세 이상 무임교통카드 이용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대중교통 이용자는 하루 평균 83만명에 달하고, 이 중 80%가 시내버스보다는 무임이 적용되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요양보호사·재활치료사 등 노인 건강 전문가들은 무릎 관절 등이 좋지 않은 노인에게 쭈그려 앉아 변을 보는 행위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부산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차모 간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행위가 뼈와 뼈 사이 연골을 닳게 만들고 이는 퇴행성 관절염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무릎이 안 좋은 노인 분들에게 동양식 변기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경 간호사도 "무릎이나 고관절 수술을 받으면 높은 변기를 사용하라고 권장할 정도로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이) 쪼그려 앉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한 스포츠재활센터에서 운동치료사로 근무하는 박모 씨는 "쪼그려 앉아 변을 보는 행위는 무릎이 약한 노인 분들에게 치명적이다"며 "관절낭과 연골, 대퇴근육에 다 안 좋아 큰일난다"고 했다.
노인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박혜빈 씨도 "동양식 변기는 노인 분들이 변을 보다 자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화장실 벽에 잡을 수 있는 지지대가 있는 곳도 적어 더욱 문제"라고 했다.
이 같은 실상에 김주함 영락노인전문요양원 사회복지사는 "노화로 인해 관절이 약화된 어르신을 위해 노약자 배려 변기 칸을 확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는 현재 지하철 역내 공공화장실 변기 현황과 관련해 마땅한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중화장실 관련 사항을 담당하는 서울시 시민건강국 감염병관리과 환경보건팀 이정석 주무관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청결 문제 등을 이유로 동양식 변기를 선호하는 분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또 "변기 같은 경우 설치를 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교체가 쉽지 않다"며 "동양식 변기를 서양식 변기로 교체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