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수 채우기 위해 배달 대행 써야
건당 800원 받아 대행료 1500원
700원 손해는 택배기사 떠안아야

택배기사가 자가격리할 경우, 배달대행업체 비용으로 30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택배기사가 자가격리할 경우, 배달대행업체 비용으로 30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방역당국 조치에 따라야 하는 건 맞지만 당장 배당된 건수를 못 채워 수백만원을 물어내야 할 판이니 답답합니다."

대형 택배업체 배달기사로 일하는 정모 씨(27·남)는 지난해 10월께 방역당국으로부터 '2주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한숨을 내쉬었다. 식사를 같이 했던 동네 지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하라는 방역 조치는 이해가 됐지만, 이로 인해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만만찮아서다.

정씨는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건강 걱정보다 통장 내역부터 확인했다"며 "2주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 300만원 정도를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정씨가 말하는 '자비 부담'은 일종의 '위약금'이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는 택배 물량 확보를 위해 택배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계약기간은 특별한 하자 없는 한 지속된다. 다만 택배기사가 계약 해지를 요구할 경우 2개월 전 택배업체에 고지를 하면 된다. 택배 담당 구역은 택배기사가 요청하는 월 평균 처리 건수에 따라 결정된다. 택배기사는 매달 처리 건수에 따라 업체와 매월 정산을 한다.

계약조건에는 패널티 규정도 있다. 택배기사가 자신이 담당한 구역에서 나온 택배물량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일명 '용차'라고 부르는 배달대행업체에게 자신의 택배물량을 대행시켜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은 온전히 택배기사의 몫이다.

일반적으로 택배기사가 택배업체로부터 받는 건당 배달료는 800원 정도인데, 용차의 경우 1500원이다. 결국 택배기사가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 조치를 받게 된다면, 수입의 두 배가량을 용차 비용으로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가격리 기간에는 택배일을 할 수 없어 택배기사들의 실질적 손실은 더욱 크다.

정씨의 경우, 일주일간 평균 택배 건수는 약 1000건인데, 자가격리로 인해 건당 1500원의 비용으로 용차를 부른다면 정씨는 일주일에 150만원 정도의 손실을 보게 된다. 2주간 자가격리를 한다면 300만원가량의 직접적 손해를 입는 셈이다.

휴가 없는 택배기사에게 2주 자가격리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휴가 없는 택배기사에게 2주 자가격리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택배업체와 계약한 담당 구역에 배당된 택배 물량을 임의로 줄어거나 늘이는 등 조정할 수 없는 점도 문제라고 택배기사들은 지적한다.

정씨는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기사들마다 정해진 구역이 있다. 그 구역에서 나오는 물량은 온전히 본인 몫"이라며 "급하게 일을 관둘 경우에도 최소 두 달 전에 얘기해야 한다. 구역을 담당할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택배기사들은 방역당국의 조치를 따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고 하소연한다. 자가격리 택배기사들이 받은 지원금은 일반 국민들에게 지원되는 자가격리 지원금 43만원(1인가구 기준)과 매출액이 감소한 자영업자에게 주는 '소상공인 방역지원금' 정도가 전부다.

택배기사들이 자가격리와 관련, 업무 환경을 고려해 PCR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올 경우엔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정씨 동료 김모 씨는 "아직 자가격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확진자가 쏟아지는 현 상황에서 나도 자가격리 대상이 될까 너무나 두렵다"며 "택배 업무 환경을 고려해 (PCR) 검사 결과 음성만 나와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혹 방역수칙 때문에 자가격리가 필수 요건이라면 용차비 차액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 등 환경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자가격리로 인한 택배기사 손실 지원에 대해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상황총괄대응과 관계자는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자가격리가 아니더라도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가 계약된 물량을 이행하지 못했을 시 책임을 무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며 "다만 현재 (택배기사) 자가격리와 관해서는 지원해주는 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매출액 감소를 증빙할 경우 택배기사도 (사업자가 신청할 수 있는) '소상공인 방역지원금'을 받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측도 택배기사 자가격리와 관련해서는 지원 방안이 아직 없다고 했다. 박상윤 디지털노동대응 TF 팀장은 해당 사안에 대해 "(택배기사와) 점주·대리점 간의 계약 관계에서 나오는 문제"라며 "자가격리 등(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이슈)과 관련해서 지원할 수 있는 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기사들이) 기본적으로 현재 별도 사업자인 경우가 많다"며 "근로 등 계약적인 부분에서 다툼이 아직까지는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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