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향방 물납제 논의로···전시에 국민적 관심
물납 미술품 감정방식 안 정해져···“공신력 있는 기준 필요”
물납 세수 감소 우려···현금화 어렵다 ‘유찰 사례 비일비재’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로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건희 콜렉션 미술품./ 연합뉴스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로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건희 콜렉션 미술품./ 연합뉴스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가 내년 시행을 앞둔 가운데, 신설 조항이 구체적 기준을 담지 못하고 있어 각계에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8개 대안을 반영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상증법 73조 2항을 신설,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대신 납부하는 물납 특례가 마련됐다.  2023년 1월 1일 상속세 개시분부터 적용 시행된다.

미술품 물납제를 포함한 개정 법률은 쉽게 말해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내는 제도다. 상속세액이 2000만원을 넘을 때 관할 세무서장을 통해 물납 신청이 가능하다. 금융 및 부동산 상속 등 일반적인 상속세는 현행법 저촉 이유로 미술품이나 문화재 물납이 불가하다. 

물납제는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컬렉션 처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건희 회장 사망 직후, 이건희 컬렉션 상속에 유족 부담 세금 규모는 12조~13조원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최고급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흔하지 않다는 점. 국내 구매자가 없으면 미술품 해외 반출로 이어질 수 있어 미술계에서 물납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당초 정치권은 삼성에 물납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물납제에 신중을 기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28일 삼성이 고미술 및 현대미술품 2만 3000여점 기증을 공식화한 뒤, 7월 개막한 컬렉션 전시에 국민 발걸음이 이어지자 급속 논의 끝에 관련 법안이 8월 발의됐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역사적·학술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와 미술품에 한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 물납이 가능하다./국가법령정보센터
관련 법률에 따르면, 역사적·학술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와 미술품에 한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 물납이 가능하다./국가법령정보센터

도입이 현실화된 현재, 아직 해결할 숙제가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화재 가치를 평가할 기준이 모호한데다 문화재는 현금화가 어려워 세수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개정안에는 모호한 조항이 많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역사적·학술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와 미술품에 한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물납이 가능하다. 아울러 관람 가치가 부족해 국고 손실이 우려되는 경우 물납을 제외할 수 있다. 이같은 조건을 평가할 기준 등 구체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평가 기준을 잡을 수 있는 정부 지정 감정 기관은 없다. 주로 감정 위원을 초빙해 가치를 평가하는 행태가 일반적이다. 고미술협회·한국화랑협회·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등에서 해당 업무를 소관하나, 이들 협회는 사단법인이어서 공신력을 따져봐야 한다. 

문화재청 일각에선 기관 지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관실 관계자는 팩트경제신문에 “기관을 만들기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 이건희 컬렉션 기증 때도 전문가 초빙 자문을 통해 가치를 평가해왔다”며 “물납제로 개인 소장 미술품이 공공으로 나오면 문화재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관을 어디로 둘 것인지 명확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문화재청이 미술 가치 감정에 개입한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국화랑협회도 적확한 감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해당 문제를 예견해 감정업무 고도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당장 문화재급 미술품이 초기 물납품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향후에는 환금성이 명확한 작가들 작품도 물납 미술품으로 나올 걸로 예상한다”며 “화랑협회는 일찍이 시가 감정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교과 과목으로 마련하는 등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세금으로 받는 물납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선 현실적 문제점으로 ‘미술품 물납 확장에 따른 세수 감소’가 거론됐다./양정숙 의원실
지난해 8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세금으로 받는 물납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선 현실적 문제점으로 ‘미술품 물납 확장에 따른 세수 감소’가 거론됐다./양정숙 의원실

억대 문화재의 현금화에 따르는 어려움도 거론됐다. 지난해 8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세금으로 받는 물납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선 현실적 문제점으로 ‘미술품 물납 확장에 따른 세수 감소’가 거론됐다. 즉 현금화 가능성이 없는 물납품이 넘쳐날 수 있단 얘기다. 

문화재급 고미술은 명확한 가치에 반해 거래가 이뤄지지 못해 현금화 가능성이 부족하다.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2020년 약 4만 건 거래된 미술품 중 문화재 보물급은 단 18건이다.

케이옥션은 오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 국보 '금동삼존불감'과 국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이 출품된다고 14일 밝혔다./ 연합뉴스
케이옥션은 오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 국보 '금동삼존불감'과 국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이 출품된다고 14일 밝혔다./ 연합뉴스

그간 유찰사례는 환금성이 부족한 문화재의 특성을 보여준다. 일례로 2020년 5월 끝내 유찰된 간송미술관 출품 보물 2점, 금동보살입상과 금동여래입상이 있다. 시작가 15억원 이후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다. 2020년 7월 보물 1796호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에 아무도 응찰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당초 35억원에 판매된 '청량산괘불탱'을 깨고 고미술 최고가 경신 여부로 기대를 모았지만 50억원을 시작가로 썰렁한 유찰을 맞았다.

이달 14일 간송미술관이 출품한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금동삼존불감’ 국보급 문화재 2점도 40억원을 웃도는 가치에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전 점 구매는 어렵다”고 밝혔다.

익명의 서울옥션 관계자는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물납제가 본격 시행될 경우 판매가 어려운 고미술 위주로 물납 심사를 요청하는 납세의무자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비교적 고미술은 환금 가치가 불명확해 어떤 건 팔리고 어떤 건 안 팔린다”며 “김환기 등 유명 근현대 화가에는 프리뷰 전부터 구매의사가 몰리는 데 반해 고미술품은 판매가 되지 않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는 이미 영국·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 미술계는 선진국에서 증명한 △미술품 및 문화유산 보존 △국민의 문화향유권 증진 △국·공립박물관·미술관 질적 수준 제고 등 물납제 효과를 들어 도입에 긍정적이었다. 프랑스는 1968년 일찍이 ‘대물변제(Dation) 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에서 물납자는 물납품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환산한 서류를 우선 제출 후 ‘대물변제위원회(Commission des dations)’의 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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