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사태는 유가와 밀접한 관계
미국, 푸틴 견제 위해 에너지 가격 낮추고 금리 인상

베니스의 상인 니콜로와 그의 열일곱 살 된 아들 마르코는 몽골제국이 유라시아를 지배하던 1271년 고대의 대상이 다니던 길을 따라 칸의 도시인 북경을 향해 떠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 폴로’는 그들의 여행이 얼마나 험난한 것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해상도시 베니스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터키를 거쳐 이란에 이르고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맥과 파미르 고원 그리고 고비사막을 지나며, 갈증과 추위로 생명을 잃을 위기를 숱하게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실크로드의 중간쯤 교통 요지에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가 있다.
알마티는 알프스에 견줄 정도로 아름다운 텐산산맥을 배경으로 울창한 숲과 마천루를 자랑하는 중앙아시아의 경제 중심지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또한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의 전체 부(富)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160여 명의 파워엘리트 올리가르히(oligarchs)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카자흐스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1400달러를 좀 넘는 중진국 수준이지만 광물과 지하자원의 부국이다. 석유 매장량은 세계 12위로 석유개발기구(OPEC) 플러스의 한 나라이며 천연가스 수출량도 세계 20위권 이내이다. 카자흐스탄의 우라늄 생산은 전 세계 총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크롬, 텅스텐, 망간 등 다른 희귀 광물의 매장량도10위 이내이다.
이와 같은 지정학점 이점을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하던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자원투자를 활발하게 유치할 수 있었다. 국부로 추앙받던 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Nazarbayev)의 시장 친화적 정책 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을 이루며 중앙아시아의 경제 모범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잘 나가던 카자흐스탄 경제는 유가 하락이라는 복병을 맞아 휘청거리게 된다. 2008년 이후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국제 원유가는 2014년 하반기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2016년 초에는 30달러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원유 수출에 크게 의지하던 카자흐스탄 경제의 실질성장률이 4% 아래로 떨어졌다. 경상수지도 적자로 반전되면서 대외부채 규모도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카자흐스탄의 국내 통화인 텡게(Tenge)의 환율이 급등했다. 2014년 초 달러당 140텡게 수준이던 환율은 2016년 초에는 달러당 350텡게로 2.5배가 뛰었다. 이로 인해 수입 물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물가도 덩달아 뛰어 2016년에는 인플레이션율이 두 자릿수가 되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도 2014년 5%대에서 2016년 17%로 크게 올랐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 하에서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생활고는 가중되었고 경제 실정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이런 배경에서 나자르바예프는 2019년 대통령 자리를 당시 자신의 측근이던 토카예프(Tokayev)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군림하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 액화천연가스(LPG) 가격이 자율화되면서 리터당 50텡게(144원)이던 LPG 가격이 리터당 120텡게(336원)로 두 배 이상 뛰었다. 리터당 300원대이면 싸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저임금이 100달러(12만 원)이고 월급 평균이 400달러(48만 원) 안팎인 카자흐스탄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차량의 90% 이상이 LPG 연료로 가동되는 상황에서 연료 가격의 급등은 보통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거기에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면서 카자흐스탄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16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촉발되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개입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토카예프 대통령이다. 그는 상왕으로 군림하던 나자르바예프에게서 군권을 회수하고 정적을 대거 제거해 권좌를 확고히 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역학관계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영향력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구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던 흑해 연안의 군사 요충지인 크리미아(Crimea) 반도를 병합했고 러시아와 서부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 대한 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1980년대 후반 동서독 통일과 동유럽 공산권에 대한 소련의 향후 불개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서방 진영이 나토(NATO)를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고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에게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미국과 서방은 입장을 180도로 바꿔 경제난에 시달리던 러시아를 시녀화하려 했고 나토 팽창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본다.
실제 나토는 과거 동유럽 공산 진영이던 폴란드, 체코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이제는 소련 국경 내에 있던 핵심지역인 우크라이나까지 나토 가입 가능성을 열어놓자 푸틴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푸틴과 러시아의 이런 영향력 확대 시도는 국제 유가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러시아의 크리미아 병합 등 국제무대에서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행한 호전적 행위들은 거의 모두 유가가 강세로 러시아가 호황일 때 일어났다.
한편, 최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대체에너지 사용을 강화한 서유럽 각국이 풍력 발전에 충분하게 바람이 불지 않자 전력난이 발생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이로 인해 천연가스의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푸틴은 또한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에서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이 지역에 친러 정권을 공고히 하는 한편,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라는 부수적 효과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푸틴의 이런 행보가 중국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의 허리 부분인 중앙아시아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지고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부의 해외 유출이 심해진다.
미국으로서는 바이든 정권을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인 국제 에너지 가격의 불안이 달가울 리가 없다. 결국 기후변화 대책으로 밀어붙이던 셰일 가스 죽이기를 그만두고 프래킹(fracking)을 통한 셰일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고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불붙은 임금 인상 랠리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으로 인한 월세 인상도 물가를 강하게 끌어올리고 있다. 통화정책의 최종 키를 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최대한 빠르게,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강력한 금리 인상을 펼칠 이유다. 미국은 금리 인상으로 제 살을 깎으면서 푸틴의 야욕을 꺾으려 한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