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가-순익비율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장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자본시장 투명성 및 효율성 개선 필요

기업의 가치는 현재시점과 미래 성장기회가 창출할 가치로 평가된다./픽사베이
기업의 가치는 현재시점과 미래 성장기회가 창출할 가치로 평가된다./픽사베이

고구려 평강공주는 아버지 평원왕의 정략결혼 추진에 반발해 궁을 뛰쳐나온 뒤 평양의 바보로 소문난 온달과 결혼한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 가세를 일으키고 온달을 교육하여 뛰어난 나라를 구하는 장군으로 만든다. 저평가된 인재에 투자해 성공한 고전적인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좋은 시사점을 던진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의 가치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게 평가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평강공주는 사람의 가치는 현재의 신체적, 물질적 크기를 넘어 미래의 성취 가능성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음이 분명하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가치는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된다. 첫째는 현재 시점에 그 기업의 자산을 분해하여 시장에 매각할 때 받을 수 있는 가격의 합(合)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파산해 청산할 때 그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 등을 팔고 빚을 갚은 후 산정되는 순자산가치이다. 이런 청산가치는 향후 성장성이 없는 무(無)성장 기업의 가치(zero-growth value)와 같다. 

둘째는 기업의 미래 성장기회(growth opportunities)가 창출할 가치이다. 이 성장가치는 미래가 가지는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할인(discount)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기업의 가치는 현재 시점에서의 순자산가치와 미래 시점에서의 성장가치 모두를 반영해 평가된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이 기업의 가치를 수백만 또는 수천만 개의 주권으로 쪼개 사고파는 곳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에서 어떤 기업의 가치가 저(低)평가되었다고 할 때는, 통상 그 기업의 현재 자산가치가 낮게 평가되거나 미래 성장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기업의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되었는지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업 가치가 주식시장에서 평가되는 정도는 시가총액(market capitalization)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463조원이고 세계에서 주식의 시장가치 1위인 애플(Apple Inc.)의 시가총액은 한때 3조 달러(3600조원)를 넘었다.

또한, 기업의 현재 시점에서의 순자산가치는 그 기업의 장부(帳簿)인 대차대조표에서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최근(9월 말) 장부상 순자산 가치는 297조원 상당이다. 애플의 경우는 207조원이다. 따라서 시가총액과 장부상 순자산가치를 비교할 경우 삼성전자의 시가-장부가 비율(P/B)은 1.6배이고 애플은 17배가 넘는다. 삼성전자가 10배 이상 저평가된 것이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외벽에 삼성 래핑이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외벽에 삼성 래핑이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또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연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순익비율(P/E Ratio)은 15배가량인 반면, 애플의 주가-순익비율은 30배가 넘는다. 이 기준으로는 삼성전자가 2배 이상 저평가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주가의 저평가 현상은 삼성전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가-순익비율로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장 가운데 하나이다. 영국계 은행인 바클레이즈(Barclays)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최근 10년 평균으로 산정 주기를 조정한 주가-순익비율(CAPE)은 17배로 일본 22배, 유럽 24배, 미국 39배보다 크게 낮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CAPE 기준으로 한국보다 저평가된 시장은 터키, 폴란드, 러시아 정도다. 

그렇다면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현상은 왜 나타나고 있을까? 우선 주가-순익비율을 상세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퍼(PER)라고도 하는 주가-순익비율은 현재 수익성 그리고 미래 성장가치와 이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전환하는 할인율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 기업의 현재 수익성은 나쁘지 않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PER가 낮아지는 이유는 할인율이 높거나 미래 성장가치가 낮게 평가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우선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높은 한국 기업의 성장가치에 대한 할인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discount)의 첫째 원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할인율이 높을까?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높은 할인(discount)을 요구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 까닭을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물건에 대한 신뢰도가 낮거나, 전체적인 이미지가 나쁘거나, 신속한 반품 여부가 불투명할 때 발생한다.

한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그 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가 나쁠 때 저하된다. 지배구조가 나쁘면 능력 없는 경영자가 선임될 수 있고, 그런 경영자를 견제할 수 없으며, 따라서 올바른 경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낮다.

또한, 기업의 지배주주가 사익을 추구하면서 회사의 자원을 유용하거나, 소액주주에게 제대로 배당을 하지 않거나, 공익적 활동이 부재할 때, 그 기업의 이미지는 나빠진다. 그런데 최근 K-드라마 등에 반영된 한국 기업의 전반적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주식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은 나쁜 주식의 신속한 반품을 가능케 한다. 기업이 공시한 정보에 하자가 있을 때, 감독당국이 이를 밝혀내 즉각적인 처벌이 가능하면 시장의 투명성이 보장된다. 이런 정보가 빠르게 투자자에게 전달될 때, 효율성이 담보된다. 사채업자가 경영권을 탈취하고 정보조작을 일삼는 한국 시장에서는 하자 있는 주식의 반품이 제때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국 기업의 PER가 낮은 두 번째 이유는 미래 성장기회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혁신에 대한 투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런 투자가 미래에도 지속될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Warren Buffet)이 한 나라의 주식시장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참고로 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로 보면, 한국 기업의 주가는 그다지 저평가되어 있지 않다. 2020년 말 세계은행(World Bank)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이 비율이 134%로 세계 10위 내에 위치해 있다. 주요국 가운데 미국, 캐나다 정도가 한국보다 높다.

이 결과는 한국 기업들이 국내보다 해외에 투자하여 벌어들인 수익이 크고 향후에도 그 추세가 이어질 것을 시사한다. 또한, 인구의 고령화와 부동산가격 등 투자의 기반 비용 상승도 미래 한국의 성장 가치가 높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미래 투자가 불투명한 터키의 10년 평균 주가-순익비율(9배)이 대체로 한국보다 낮은 반면, 거액의 국내 반도체 투자가 활발히 진행 중인 대만(30배)이나 인구가 젊고 해외투자가 강하게 유입 중인 인도(35배)가 높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따라서,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하여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의 투명성 및 효율성 개선과 더불어,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정된 자본을 성장성이 높은 분야에 효율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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