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치매 환자 돌봄 수기]
치매에 빠진 제주 하루방 2편
치매 앓는 아버지 자신의 일터로 모신 요양원 간호사
그 이후, 아버지 요양원생활에서부터 임종까지의 기록
지난주에 이어, 제주도 소망요양원 신희자 간호사님의 사연 두 번째입니다.
아버지께서 요양원으로 들어오고 나서, 저는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시기 어려웠습니다. 저희가 차려놓은 저녁 식사를 데워 먹는 것조차 힘들어하셨죠. 그런 상황에서 계속 혼자 계셨다면 저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아버지 걱정을 하면서 지냈을 것입니다.
때로는 아버지께서 입맛이 없으신지 밥을 잘 못 드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아버지께 가서 “아버지 뭐 먹고 싶은거 어수꽈?(아버지 뭐 드시고 싶으신 것 없으세요?)”하고 여쭤보았습니다. 어떤 날은 “돼지고기 삶은 거 먹고 싶긴 헌디(돼지고기 삶은 거 먹고 싶은데)”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고사리 육개장 먹고젱도 헌디(고사리 육개장 먹고 싶기도 한데)”하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버지 식사를 챙기다 보니 제 손맛에 익숙해지신 것이겠지요. 집에 계실 때, 국 종류로 고기를 넣은 몸국, 소고기 뭇국, 고사리 육개장 등을 해서 갖다 드리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요양원에 오시고 나서도 한 번씩 그때의 음식들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집에서 음식을 해서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드실 수 있게 챙겨다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참 맛있게 드시곤 했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요양원에 와도 영 딸 얼굴도 자주 보고허난 좋은 게(요양원에 와도 이렇게 딸 얼굴도 자주 보니까 좋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평소 아버지께서는 이런 표현을 가족들에게 잘하는 분이 아니신데··· 아마도 점점 연세가 들어가고, 연로해지시다 보니 이런 표현도 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망상 증상이 있었는데, 한번은 “밭에 콩 갈아 놔 신디 그거 허래 가야될건디(밭에 콩 심어놨는데 그거 걷으러 가야 될 건데)”라며 걱정하시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밭에 콩 갈아 수 꽈(아버지, 밭에 콩 심으셨어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께서 “어, 콩 하영 갈아놔서, 그거 행 와부러야 될 거주게(콩 많이 심어놔서, 그거 걷어와야 될 텐데)”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놉 빌엉, 밭에 강 콩 행 오쿠다. 너무 걱정허지 맙써(일손 구해서, 밭에 가서 콩 걷어올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자 “너가 그거 해지커냐(네가 그거 할 수 있겠니?)”라고 하셨죠. 저는 “놉 빌엉 허믄 해 집니다. 너무 걱정허지 맙써(일손 구하면 할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고, 아버지께서는 “경허믄 너가 아랑 해불라(그러면 네가 알아서 해봐라)”라며 안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병원 진료가 있는 날에는 휴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갔다가 오는 길에 아버지랑 둘이서 맛집을 다니기도 했죠. 몇 번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병원에 가는 걸 귀찮아하시다가 점점 병원 가는 날을 기다리시곤 했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께서 워낙에 엄하셔서 같이 다니는 걸 상상조차 안 해봤는데, 이렇게 아버지랑 둘이서 맛집을 다니다 보니, 그런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번은 선녀와 나무꾼(테마공원)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족들이 함께 사진도 찍고 아버지께서도 지난 시간을 회상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를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드리면서, 우리 식구들은 다음에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갖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면서 그런 시간이 저희에게 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7월 아버지께서는 아버지께서 평생을 지내셨던 집에서 자녀들에게 “건강하게 지내라”라고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아버지께 “아버지 사랑해요. 저희 이렇게 키워 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소천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