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 개정 추진
고소·고발 남발·공익보도 위축도 예상
법조·언론계 "국민 알권리 침해될 것"

더불어민주당이 8월 국회 처리 목표로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두고 야당은 물론 법조·언론계 등에서도 비판이 거세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창립 64년이래 처음으로 비판 성명까지 냈다. 

이 법은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손해액의 5배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언론의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고위 공직자와 기업 등 권력을 가진 이들이 법을 악용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제389회 국회 임시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정 위원장 주재로 열렸다. / 연합뉴스
제389회 국회 임시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정 위원장 주재로 열렸다. / 연합뉴스

가짜뉴스 피해구제냐 언론 길들이기냐···논란 지속

개정안에서 문제가 되는 조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고의·중과실 추정, 구상권 청구 요건, 정정보도 청구 표시, 기사열람차단 청구권 등이다.

언론이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로 재산상 손해를 입히거나 인격권 침해를 했을 때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또 취재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거나 제목을 왜곡한 경우, 사진·삽화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에는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삽화 왜곡의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일러스트를 쓴 조선일보 왜곡 보도 사태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 공무원, 판·검사, 대기업 등에 대해서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 보도한 경우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제한을 뒀다. 허위·조작보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것을 인식한 경우, 허위·조작보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우 등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의 감시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예외를 둔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중인 KBS노동조합의 허성권 위원장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허위·조작보도 등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강행 처리됐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중인 KBS노동조합의 허성권 위원장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허위·조작보도 등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강행 처리됐다. / 연합뉴스

예외조항에도 불구 악용 가능성은 여전 

하지만 이같은 예외조항에도 불구하고 악용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허위·조작 보도의 범위나 '악의'를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10일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어떤 주장에 대해 진실을 판가름 하는 것도 어렵고, 판단자 주관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어서 허위 정보라는 프레임은 쉽게 씌워질 수 있다"며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조항을 이용해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의 의혹 보도를 초기에 진화 하거나 위축시키기 위해 공인이나 기업들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하고 기사 열람청구권을 남발하게 된다면, 당연히 언론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은 개인이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사례를 예로 드는데, 언론보도의 대상은 공인·기업 등 정치·경제 권력자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이들은 법을 남용하기 쉽기 때문에 (법 개정은) 민주주의에 있어 악영향이 크다"고 덧붙였다.

언론 단체들도 언론중재법이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견 언론인 모임 관훈클럽은 공식 의견에서 "1957년 창립 이래 정치적 중립을 위해 현안에 대한 공식 의견 표명을 자제해왔다"며 "그러나 최근 여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은 우리 사회 저널리즘의 미래와 국민의 알 권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협회 등 6개 언론단체도 지난 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언론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들 단체는 결의문에 "개정안은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주적 악법"이라며 "민주당이 입법 권력을 이용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긴급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긴급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익적 언론 활동 위축시킬 것"

민주당은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 관련 단체들이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는 입법 기구로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법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부위원장인 김승원 의원도 "민주당에서 10여차례 토론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답변을 받았다. 또 국회 수석전문위원 등 입법 보좌진 수십명이 검토했다"며 "위헌을 말하는 헌법 교수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있다. (그 비율이) 9대1, 8대1이라면 더 들어봐야겠지만, 비슷비슷한 비율이라 아직 (자문 등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사례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승원 의원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다. 적용대상에 보편적 적용이라서 언론도 포함 돼 운영되고 있다"면서 "다른 나라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손지원 변호사는 통화에서 "언론 분야만 타겟팅을 한 것이 없다는 조사"라며 "외국에서 굳이 언론을 타깃팅으로 설정하지 않는 이유는 강한 규제를 도입하면 언론의 위축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언론중재법 개정안 쟁점과 해법' 긴급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의견들이 나왔다. 개정안이 공익적 언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며, 실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는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수준이 낮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났다고 해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미 형사 처벌이 가능한 점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입법자들이 가정하고 있는 '악의적 허위보도'나 '비방할 목적의 허위·왜곡보도'가 명백하다면 형법 제307조 제2항, 형법 제309조 제2항,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에 의한 형사처벌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과거 정권에 있었다면 국정농단 '최순실 보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건 중요한 헌법정신"이라며 "소송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 언론중재법 취지인데, 민주당의 개정안은 (비판적) 뉴스 유통을 줄여 결과적으로 언론자유지수를 하락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법안대로라면 최순실 보도는 보도 시점에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적용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언론개혁을 근본적으로 하려면 처벌보다는 언론 환경 개선이나 자정작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 변호사는 "언론사가 자본이나 정치적 압박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국회가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 관련해서는 보류하면서 언론중재법을 강행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재진 한양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언론개혁은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옳다"면서 "소비자와 언론사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는 쪽으로 정치권이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판 속에서도 강행하겠다는 민주당 

이처럼 많은 우려에 신중한 검토가 요구되지만 민주당은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언론개혁의 당위를 떠나 민주당이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이는 이유에 정치적 판단이 담겼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대선을 앞두고 검찰·언론개혁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 이슈들을 매듭지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차 교수는 "가짜뉴스가 사회적인 문제인 것은 사실인 만큼 문 정부 과제를 달성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근거 없이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일각의 극단적 세력을 규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에 넘어가기 전에 처리해야 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여하는 언론중재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표결을 거쳐 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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