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법원 판단 존중”...조기 진화 노력
與 “기득권 카르텔” 野 “文, 영혼 없는 사과” 공방

서울행정법원 재판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를 인용하면서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 커진 가운데, 윤 총장의 직무 복귀’를 둘러싸고 여야의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법원은 12월 24일에도 윤 총장에게 승기를 쥐어줬다. 이로써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강 대 강 대치에서 윤 총장은 연승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지난과 사뭇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의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제청을 ‘재가’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선 16일 청와대는 법무부의 ‘윤석열 찍어내기’의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했던 이들을 의식한듯 현행법상 대통령은 별도의 재량권 없이 재가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갖고 “검사징계법에 따라서 법무부 장관이 징계 제청을 하면 대통령은 재량 없이 징계안을 그대로 재가하고 집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즉, 추 장관과 윤 총장이 벌인 극한 대치와 청와대는 관계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법원의 결정에 대해 청와대는 몸을 낮춰 조기에 상황을 진압했다,
문 대통령은 25일 윤 총장의 직무 복귀와 관련,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유감’ 등의 표현이 아닌 직접적으로 ‘사과’를 언급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다만 그는 법원이 지적했던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검찰을 겨냥해 "특히 범죄정보 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찰한다는 논란이 더 이상 일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인 협조 관계를 통해 검찰 개혁과 수사권 개혁 등의 후속 조치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와는 달리 여권은 여전히 윤 총장과 법원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검찰의 강한 저항에 가려져 있었지만 일부 판사들도 자신들의 기득권 카르텔이 깨지는 게 몹시 불편한가 보다”라며 “4년 전에는 광화문에 모여 국정농단에 맞서 촛불을 들었지만 이젠 온라인에서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에 맞서는 촛불을 들어야겠다”고 다시 ‘촛불 정신’을 강조했다.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에게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물먹고 변방에서 소일하던 윤 검사를 파격 발탁한 분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면서 “윤 총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대통령께는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고, 인간적인 도리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법원 판결 이후 “사법부의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그리고 상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윤 총장의 직무 복귀 소감과 관련,“윤 총장은 행정부의 한 조직인으로서 사법부에 감사하기 전에 국민과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며 “상식을 지키겠다면 이제 그 직을 내려 놓으라”고 몰아세웠다.

여권 재야 인사들도 움직였다.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청와대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검찰의 태도와 법원의 해석은 너무도 생경한 선민의식과 너무도 익숙한 기득권의 냄새를 함께 풍긴다”라며 “정치적 판단을 먼저하고 사건을 구성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구분도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임 특보는 “손 놓고 바라보아야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진다”라며 “민주주의가 너무 쉽게 약해지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외롭지 않도록 뭔가 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언급했다.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을 의결한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추 장관을 대신해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법원의 윤 총장 직무 복귀 판결에 대해 “유감”이라고 거론했다.
정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법원이 기피 의결 절차의 위법성을 지적한 것을 반박하며 이 같은 입장을 보였다.
징계 당시 징계위원 3명이 기피 의결에 참여해 재적 위원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그는 징계위 기피 의결 때 출석위원은 3명이 아닌 4명이라고 주장했다. 출석위원 수에 기피 신청을 받은 위원도 포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기피 신청을 받은 사람은 그 의결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현행 검사징계법 조항을 들며 기피 신청 위원이 배제되는 상황은 ‘의결’에서만 이뤄지는 만큼 ‘출석’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와 의견이 갈렸다.
정 교수는 이번 법원의 판단에 대해 “법조 윤리에 관한 이해가 매우 부족했다”며 “법조 윤리 기준은 부적절한 행동뿐만 아니라 그렇게 의심받는 행위도 하지 말라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 이유는) 법관윤리 강령이 공정성을 의심받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는 취지”라며 “비록 검사 윤리 강령에는 ‘의심받는 행동’ 규정이 없지만, 품위 손상 등을 해석하거나 적용할 때는 이런 강령을 참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법원의 판결을 반기며 이를 근거로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같은 날 발표한 논평에서 “어제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빌린 대통령의 사과는, 사죄의 형식을 빙자한 검찰개악을 멈추지 않겠다는 오기의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영혼 없는 사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여권을 향해 “권력 중독이 선을 넘었다”면서 “추 장관의 사표가 곧 수리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법치주의 폭거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고 무마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여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