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던진 ‘덫’에 지역의원 대 지도부, TK의원 대 PK의원 간 자중지란 모습
이제부터라도 김해신공항 백지화 위법성·정략적 개입·사업성 등 제대로 따져야
김 위원장 나서 교통정리하고 당 공식 입장 내야···야당 본연 역할로 돌아가길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 추진을 사실상 백지화하자 엉뚱하게 국민의힘 진영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백지화 과정에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진실 규명은 뒷전이고,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부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엉망진창의 대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지도부는 부산경남 여론을 의식해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고 사실상 식물 지도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여권이 선거를 앞두고 ‘떡고물’을 던져주자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먹기에 바쁩니다. 자존심은커녕, ‘없는 살림’에 내차지라고 덤비는 세력과 이를 뜯어말리는 쪽으로 나뉘어 추태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보궐선거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안 해도 될 선거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만 267억 1300만원입니다(서울은 570억 9900만원).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부산시장의 몰지각한 행위 때문에 낭비되는 것입니다. 내년 부산 보궐선거는, ‘성추행 시정 파탄자’에 대한 집권여당의 책임을 묻는 선거로 규정돼야 합니다. 부산시장의 유고로 시정이 겉돌게 되고 정책의 연속성이 끊어진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권은 내년 보궐선거에 ‘무공천’ 당헌을 어기고 후보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자는 자의적인 논리를 ‘공당의 도리’(이낙연 대표)로 둔갑시켜 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가덕도 신공항 안을 ‘당근’으로 성추행 시장의 시정파탄을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일방독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4월 총선 때 민주당은 위성비례정당을 이해찬 전 대표가 처음에는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이해찬 전 대표)고 비난하더니 며칠 만에 “비례정당으로 미래통합당을 응징해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오로지 우리편만의 이익과 상대적군의 피해여부만이 원칙이 돼 버렸습니다. 이번 가덕도안만 해도 아직 정해진 곳은 없지만 일단 가덕도로 밀어붙여 부산의 표심을 자극하려고 합니다. 민주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은 데 대해 반성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무능한 야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해도 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야당의 누구 하나 나서서 통렬하게 여당의 뻔뻔한 선거 꼼수를 비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당이 주는 독배를 생각 없이 마시려고 합니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방안이 발표된 날부터 국민의힘 대응을 한번 보겠습니다. 국민의힘은 김해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된 17일, TK 의원 간 간담회를 열고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당시 간담회 분위기는 매우 조심스러웠다고 합니다. 해당 간담회에 참석한 대구 지역 한 의원은 “부산시장 선거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당이 적극적으로 (찬반)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당도 의원들의 개인 의견이 SNS를 통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산 선거가 걸린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조심하자는 정도의 이야기만 오갔을 뿐 당 지도부 차원의 대응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19일 의원총회에서도 ‘당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합니다. 부산 지역 한 의원은 “의총에서는 ‘민주당이 야당을 갈라치기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 절대 당해선 안 된다, 분열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결의를 다진 지 불과 하루 만에 당내 갈등이 외부로 터져 나왔습니다. 부산 지역 의원 15명 전원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제출한 것입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당론으로 제출한 것이자 민주당보다도 한발 앞서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민주당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습’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주호영 원내대표는 불쾌한 기색을 그대로 표출했습니다. 평소 얼굴 붉히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그는 “당 지도부와 논의도 없이 국민의힘 부산 지역구 의원들이 가덕도 특별법을 낸 것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정권과 민주당이 부산시장 선거를 위해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던진 이슈에 우리가 말려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17일 백지화 발표 이후 사흘 동안 국민의힘은 당 차원의 공식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생각부터 엇갈렸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개인 입장을 밝혔지만, 주 원내대표는 “김해 신공항 검증위원회는 ‘(김해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철저히 들여다보고 검증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반발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부산지역 의원들은 특별법을 기습 발의해버렸습니다. 지도부가 입장조율을 한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 대표는 ‘찬성, 원내대표는 ’반대‘, 부산지역 의원들은 기습 발의로 국민의힘 대응은 사분오열되었던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정부 여당의 ‘김해 신공항 백지화-가덕도 신공항 추진’이 당장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노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국민의힘 TK의원과 PK의원 간 분열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습니다. 대구 경북은 김해 신공항 백지화에 반발하고 있고, 부산 경남은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민의힘은 여당이 던진 덫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힌 신세가 됐습니다. 이견을 다는 순간, ‘가덕도안’에 반대하는 모양새가 돼 부산시장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국민의힘이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나, 이번 선거에 나서는 부산시장 후보군들은 가덕도 신공항을 크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지역구에 기반을 둔 의원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합니다. 또한 이외 의원들 사이에서도 ‘가덕도가 부산시장 선거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란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어 가덕도안 반대가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부산시당 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홍준표 의원의 부산·대구·광주 공항 특별법과 함께 통과시키자는 건설적 제안을 환영한다. 부산 가덕도, 대구신공항, 광주무안신공항을 지역관문공항화 하여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삼자는 것은 충분히 논의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가덕도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선거를 무시하면서까지 원칙론을 견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여준 것은 분열과 무책임뿐이었습니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22일 국민의힘을 향해 “학교 학생회보다 못한 정치력이다. 지도부란 존재하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양 최고위원은 “개인 의견이라면 지도부는 왜 있는가. 국민의힘 당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이뿐만이 아니다. 공정경제3법을 두고도 김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생각은 물론 국민의힘 개별 의원들 간 입장 정리도 안 돼 있다. 가덕도 신공항 앞에서는 국민의힘이 반으로 쪼개졌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대국민 사과에 대한 입장도 김 위원장 다르고 주 원내대표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국민의힘에게 당론이란 ‘반문’과 ‘반민주당’ 외에는 존재하지 않나 보다. 정책 현안과 정무적 이슈에 대한 당론도 내놓지 못하는 지도부가 왜 있어야 하나. 학교 학생회의 정치력도 이보다는 낫다. 학급별로 체육대회 유니폼을 고를 때도 각 반의 입장과 선호도라는 것을 가져와 서로 조율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여당의 정치적 공세일 수 있지만 야당의 지도부 리더십 부재를 신랄하게 질타하는 말이었습니다. 여당의 초선의원에게 야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도매급으로 무시를 당했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딱합니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검찰총장 중심의 정계개편설까지 야당 내부에서 나오겠습니까. 1차적 책임은 김종인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여권의 백지화 발표 즉시 당론을 모으기 위한 의견수렴 작업에 들어갔어야 합니다. 물론 의총을 통해 ‘당론’을 모았지만, 그것마저 다음날 부산지역 의원들의 ‘뒤통수’로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존재감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야당은 제대로 대응해야 합니다. 야당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면밀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예산이 낭비되는 측면은 없는지, 안 해도 될 사업을 정치적 잇속을 챙기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따져야 합니다. 신공항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김해신공항 검증위가 백지화안을 발표하자 기존 논의 내용과 결론이 뒤집혔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선거를 앞둔 여당의 정략적인 개입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당은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를 열어 결정 과정 전반을 따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김해신공항에 대한 검증위 결론과 새로운 입지 선정은 별개의 문제인데도 가덕도를 밀어붙이려는 여당에 맞서 사업성은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10조원의 예산으로 부산시장 선거를 사는 것이라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김해신공항 검증위의 발족부터 백지화 결정 과정에 대해 위법은 없었는지, 정부의 부당한 개입은 없었는지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집권여당의 실정과 권력개입을 감시하는 야당 본연의 역할입니다. 국민의힘 영남권 의원들이 TK(대구경북)·PK(부산경남)로 양분되고, 당 지도부도 이견을 노출하면서 여권의 프레임에 말려든 측면이 있지만 마냥 여기에 매몰될 수는 없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나서서 양분된 영남권 의원들에 대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합니다. 부산지역 의원들이 팀워크를 깨는 플레이를 자제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당 차원의 공식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 상황은 가덕도안의 찬·반에 대한 가부 논리뿐입니다. 그 외통수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여당과 협상을 해야 합니다. 일단 검증위가 김해신공항에 대해 백지화시켰기 때문에 이후 모든 후보지역을 선택지로 넣어 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가덕도 신공항 찬반 관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동남권 신공항이 현실적으로 필요한지,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인지 등을 근본적으로 검토한 다음 가덕도 입지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이 가덕도안을 기정사실화 하며 밀어붙이는 전략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여타 후보지역들을 가덕도와 등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그것을 공론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당론을 정하는 것과 함께 김해신공항 백지화 과정에서 불거진 검증 과정의 절차적 적법성 논란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김수삼 검증위원장이 김해 신공항 ‘백지화’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만큼 검증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보고 이에 대한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입장도 요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토교통부가 백지화에 반대했다는 의혹도 규명되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천 이사장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깝고 편리한 김해공항을 두고 거의 20㎞나 더 떨어진 가덕도까지 가겠다고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짓과 미신에 현혹된 시민들을 무지와 오해에서 깨워줄 용기를 가진 의원이 한 명도 없다면 ‘국민의 힘’에 더 이상 희망을 걸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그는 “부산시민들도 가덕도 신공항을 부산경제를 살릴 만병통치약인 듯 떠드는 정치인들의 요설을 경계하는 안목을 가져야 부산이 살 수 있다. 이들의 계략에 말려들면 김해공항 확장만 더 지연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산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김해공항 확장을 독촉하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허비할 돈으로 김해공항에서 부산 도심까지 10분 만에 주파할 급행전철을 건설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천 이사장은 자신의 글에 댓글을 달아 가덕도 신공항이 ‘고추 대신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멸치 말리는 공항’이라는 표현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노회찬 전 의원의 “비행장 만들어 고추 말릴 일 있느냐”는 비판에 빗댄 것입니다.
코로나19로 기존의 세계질서와 경제에 대한 상식이 무참하게 깨지고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신공항은 그런 점에서 어떤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공론화시켜야 합니다. 10조원짜리 ‘멸치 건조장’을 만드는 데 온 부산시민의 정신을 팔게 하는 것이 여당의 선거전략이라면 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집권여당이 내년 4월 선거 때까지 열심히 군불을 지피다가 선거가 끝나면 이번 검증위의 백지화 발표처럼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 수도 있는 것이 가덕도안입니다. 지금 여당은 ‘10조원으로 표 좀 달라’며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표를 위해 날뛰는 여야 정치꾼들의 비이성적인 목소리만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성적인 판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