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퍼트리고 폭력시위 조장 목적 띤 특수군인 편의대원 박한수 역 맡아
처음 윤이건 역 제안받아···광주시민으로 살아온 뜨거움 녹여낼 자신 없어 거절

“올 초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에서 조선인 학도병 최대치를 연기했어요. 이번 작품인 ‘광주’에서는 편의대원인 박한수를 맡았고요. 한 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두 작품에 출연했는데, 솔직히 어려웠죠. 행동과 표정, 말과 노래로 아픔의 깊이를 펼쳐내야 한다는 것이 말이에요. 그럼에도 실제 박한수가 되기 위해 극 중에서의 역할, 감정,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제작된 창작 뮤지컬 '광주'(연출 고선웅, 제작 라이브·극공작소 마방진)의 서울 초연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14일부터는 경기 고양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를 거쳐 광주까지 전국 투어에 들어간다. 10월 9일부터 한 달간 진행된 서울 공연은 만여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매회 전원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40년 전 그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하게 항쟁을 벌인 광주 시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에서, 테이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폭력 시위를 조장할 목적을 띤 특수 군인 ‘편의대’ 대원 박한수로 분했다.
테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즐겁다’와 ‘감사하다’였다. 2012년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을 시작으로 뮤지컬 배우를 시작한 그에게 배우로서의 시간은 늘 즐겁고 감사한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3~4년에 불과하다며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는 ‘연기’가 좋아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깊어간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끼리 주고받는 에너지가 좋고, 제가 여러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그 인물로 살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들도 즐겁고요.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작업 자체가 인간적으로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발라드 황태자’라 불리던 가수 테이에서, 이제는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되는 배우’라고 칭해준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뮤지컬 배우 테이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광주’ 서울 초연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아직도 첫 주 공연을 하고 내려온 것 같은데, 벌써 서울 공연의 끝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잘 몰랐던 이유도 있었다. 특히 ‘광주’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지금도 겪고 있을 아픔을 맞닥뜨려야 된다고 생각하니 무거웠다.
고선웅 연출님의 설득이 컸다. 그분과 함께 작품을 하며 많이 배웠다. 나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에게 그는 좋은 리더이자, 선생님이었다. 개막 이후에도 여러 피드백을 수렴해 더 좋은 방향으로 작품을 다듬어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한수 역할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나갔다. 관객들이 무대를 보며 박한수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해준다면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는 것일 테다."
-505부대 편의대원으로 등장한 ‘박한수’ 역에는 배우 민우혁, 서은광과 함께 캐스팅됐다. 본인이 표현한 ‘박한수’는 어떤 캐릭터인가?
"처음에는 윤이건 역할을 제안받았었다. 못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으로 살아온 윤이건의 뜨거움을 녹여낼 자신이 없었다. 대신 박한수 역할이 끌렸다. 시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던 군인인 그는 제대 전 마지막 임무로 광주에 내려왔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점점 현실에 눈을 떠가는 것이, 광주를 처음 마주하는 나와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통상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다른 작품에 비해 ‘광주’에서는 모든 배역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야학생, 야학교사, 목사, 군인, 시민군 등 저마다 그때 광주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안에서 박한수의 변화를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표현할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한 편의 영화 같았던 트레일러 영상이 화제가 됐었다.
"금남로, 전남도청 등 광주의 여러 역사적 장소를 찾아 촬영을 진행했다. 많이 배워갈 수 있고 많이 얻어갈 수 있는 자리인 거 같아서 설레기도 했다. 그날의 장소에서 그날의 함성이 떠올라 엄숙해질 때도 있었다. 박한수로서 본격적인 연습 전, 몇 차례 대본 리딩 후 이어진 촬영이었기에 긴장도 됐었다. 다른 배우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더 집중해서 임했던 촬영인데 결과물이 좋게 나와 기뻤다."

-작품을 아우르는 40곡의 넘버 가운데 애착 가는 넘버가 궁금하다.
"극 중 야학생으로 나오는 장삼년이 '용수는 형님이 죽인 거야'라고 내뱉고 떠나는 신에서 부르는 넘버가 있다. 사실 연습실에서도 완창한 적이 없는 노래다. 너무 아프고, 외롭고, 속상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군인들은 박한수를 배신자라 손가락질하고, 모든 걸 버리고 온 시민군에게도 그는 ‘타인’이었다. 삼년이한테마저 외면당할 때 그 쓸쓸한 감정에 동화돼 쉽게 부를 수가 없었다. 지금도 무대에 오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뮤지컬 ‘광주’의 종착지는 광주다. 이곳에서의 공연은 남다를 것 같다.
"작품 예고편과 포스터 촬영은 광주에서 진행됐다. 시작도 광주였고, 마무리도 광주다. 사실 진짜 광주분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부담감을 떨치고 다른 지역 무대에서 박한수로 섰던 것과 다름없이 무대에 오를 것이다. 광주분들이 어떻게 느끼고 호흡해줄지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한다. 처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긍정적인 목표, 고선웅 연출님도 이야기했듯 넘어지고 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딛고 일어서는 광주의 이야기를 전하고픈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한해는 공연계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할까 무섭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도 공연을 보러 와주는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다. 무대에서 괜찮다가, 커튼콜 때 울컥하는 경우가 많다. 마스크를 쓰고 박수 쳐주는 모습에 말이다.
무대에 서면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마스크 속 갑갑한 호흡이 배우에게도 전해진다. 그들의 표정과 반응을 느끼며 함께 호흡해야 진짜 무대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어려워지게 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럼에도 힘든 시기를 함께 겪어가는 관객과 배우간의 애틋함과 끈끈함이 여느 때보다 커진 것 같아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