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여권의 대권구도에서 결국 낙마했습니다. 김 지사는 지난 6일 민주당원 댓글조작 의혹 사건(드루킹 사건) 항소심에서 실형(징역 2년)을 선고받으면서 차기 대선 도전이 사실상 어려워졌습니다. 대법원 최종판결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건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1, 2심 재판부가 유죄의 증거로 삼은 절차나 법리 적용 등에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기존 판례에 비춰봤을 때 파기환송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김 지사가 ‘아웃’됨으로써 여권의 대권구도도 지각변동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김경수 지사가 잠룡 후보군에서 사실상 탈락하면서 당분간 ‘이낙연-이재명’의 양강 대결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유예기간’입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양강 구도가 주는 식상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더구나 친문세력에게는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적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정체된 양강 구도를 깰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문이 제3후보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야권의 대선후보가 잘 보이지 않고 현재의 판세라면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 ‘예선’이 사실상 결승전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제3후보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누르고 있기는 하지만, 대선후보 선출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과 같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며 이낙연-이재명 두 후보 가운데 한 명이 ‘자연스럽게’ 대선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입니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민주당의 대권구도에도 격랑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주당은 ‘결격자 무공천’의 약속을 어기고 이번 보궐선거에 모두 후보를 출마시키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총대를 멨습니다. 민심의 역풍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그것을 거스를 만큼의 절박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 대표에게뿐 아니라 민주당에게 내년 보궐선거는 대선으로 직행하는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이 대표로서는 이 선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특히 대통령 선거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압승은 아니더라도 승리만 하게 되면 ‘이낙연 대세론’이 굳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궐선거 뒤 대선후보 선출기한이 5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방만 하면 대세론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일단 근소한 표차이라면 이 대표가 저항할 명분이 생깁니다. 하지만 비교적 큰 표 차이로 질 경우 민주당 내부에서 제 3후보로 눈을 돌리는 세력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낙연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서울시장 선거로 확인되면 곧바로 ‘대안’을 찾게 됩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군 중에서 유력한 주자가 보이지 않고, 여론도 여전히 현 집권세력에 호의적인 점이 지지율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느슨한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정권재창출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강할 것입니다. 20년 집권론도 팽배합니다. ‘이낙연=서울시장 패배’는 또 다른 후보의 차출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선거에 패배한 장수에게 또 다시 군령권을 맡길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대체주자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선에서의 승리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반드시 이낙연이어야 한다’는 이낙연 필승론도 힘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게 되면 이낙연 대표는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후보군 탈락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가진 스스로의 한계도 있습니다. 그는 지난 9월 초 당 대표 취임 뒤 2개월 넘게 민주당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보여준 뚜렷한 리더십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낙연 대표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이런 ‘관리형 리더십’은 안정감을 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중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대표는 또한 ‘실수 회피형 리더십’만 유지해서 평탄한 길을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이낙연’이라는 기조를 이 대표가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낙연 대표는 한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주자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 엇비슷하게 연동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오를 땐 이 대표 지지율도 오르고, 떨어지면 같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은 본인이 만들었다기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이는 이 대표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애초 친문의 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친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친문의 힘으로 사실 현재의 당 대표 자리를 꿰찬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도 등극했습니다. 오롯이 이낙연의 경쟁력을 가지고 급부상한 것이 아니라 친문과 문재인 대통령이 떠밀어 올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낙연의 목소리는 없고 ‘친문 스피커’라는 이미지로만 각인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낙연 대표가 대선후보로서 ‘자립’하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지지층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친문=이낙연’으로 인식되면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11월 1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7~9일 전국 만18세 이상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야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윤 총장 지지 응답이 24.7%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2%,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8.4%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결과는 윤 총장의 정치적 위상을 나타낸다기보다 이낙연-이재명 양강구도에 대한 대중들의 식상함과 거부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해보입니다. 아직 윤 총장이 본격적인 정치입문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가 보여준 정치적 퍼포먼스는 거의 없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1위를 차지했다기보다 이낙연-이재명이 2, 3위로 밀려났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 같습니다. 

그동안 이낙연 대표가 보여준 것 중 기억나는 건, 보궐선거에 무공천 약속을 뒤집고 출마를 강행했다는 정도입니다. 이 대표는 이 과정에서 친문의 이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친문에 갇혀버린 이낙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것이 지지율 정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지지율 하락 추세는 친문에서부터 ‘이낙연 필승론’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친문으로 뜬 자, 친문으로 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친문세력이 이낙연 대표를 60%의 지지로 당 간판으로 밀어 올렸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테스트 기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친문에게 이낙연 대표는 ‘만만한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강력한 메시지 전달력과 추진력으로 친문세력을 카리스마 있게 끌고나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런 이 대표에게 친문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친문에 적극적인 구애를 해서 완전히 달라붙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낙연의 대권주자 존재감도 미미할 것입니다. 만약 집권세력이 연루된 권력형 게이트라도 터지게 되면 그 책임론이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이낙연 대표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이 대표를 ‘몸빵’ 시키고 친문이 다른 주자를 찾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낙연 대표의 현재 위치는 불안정합니다. 이 대표도 자신이 친문의 완전한 선택을 받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완전한 지지를 얻기 위해 더욱 친문 중심의 당 운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지지층의 확장 여지는 줄어듭니다. 이 대표로서는 친문의 세력권에 갇혀 지지율이 정체되는 악순환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는 다소 ‘올드’해보이고, 이재명 지사는 과격해서 불안해 보인다”는 분위기가 상존합니다. “당내 경선이 흥행해야 본선에서도 유리하다. 또 누가 나올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 3후보가 나오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봐야 합니다. 
 

현재의 민주당 지형도를 볼 때, 친문을 대표하는 주자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은 이낙연 대표가 가장 앞서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 친문은 반드시 대안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능성이 높을까요? 

현재 여권에선 정세균 국무총리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이낙연의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일각에선 원조 친노로 꼽히는 민주당 이광재 의원에게로 눈길을 주고 있지만 본인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라며 몸을 한껏 낮추고 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어떤 주자이든 친문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여권의 대선판이 크게 흔들릴 것은 확실합니다. 

정세균 총리는 연말 개각과 함께 대선판에 뛰어들 것이 확실시 됩니다. ’정세균계‘ 의원들이 주축이 된 공부모임 ‘광화문포럼’이 지난달 26일 활동을 재개하면서 그의 대선 도전은 당 안팎에선 이미 기정사실로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 총리가 훌쩍 등판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의 정부 최고 사령탑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 총리가 대권도전으로 방향을 튼다면 ‘자기 잇속만 차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 총리 개인적으로는 대권도전에 대한 열망이 큰 것으로 알려집니다. 정 총리는 지난 7일 지진피해 복구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경북 포항을 방문한 뒤 페이스북에 “저는 포항의 사위”라고 적어 “대선 몸풀기에 나섰다”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국내 상황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만큼 그가 마음 편하게 대권도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여의치 않습니다. ‘선공후사’를 유독 강조하는 정 총리의 정치철학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정세균 총리가 ‘대권 대장주’로 뜨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 총리를 낙마한 김경수 지사와 비교할 때 나이나 이미지, 출신 지역 등이 다른 친노·친문 유력 인사들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그가 곧바로 대체재로 떠오르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히 정 총리 정치 스타일은 ‘이낙연의 아류’로 여겨집니다. 무색무취의 관리형 리더십입니다. 미래권력을 확실히 보여줄 만한 정세균만의 카리스마 있는 정치력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입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거론됩니다. 임 전 실장이 비록 “제도권 정치 떠나 본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며 현실정치를 떠나있기는 하지만 꾸준히 대권주자 하마평에도 오르내립니다. 그는 최근 ‘남북 도시 교류 사업’ 추진 차원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기초단체장들을 만나는 등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는 뉴스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 최근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박주민 의원을 이은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신 친문으로 분류되는 임 전 실장은 김경수 지사와도 가까운 관계입니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실장은 친문 진영의 호감을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의 경우 차차기에 대권도전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가 ‘통일’을 자신의 대권도전 모멘텀으로 잡고 남북간의 평화무드가 올 때를 기다리며 차차기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인 스스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고 한 것은 당분간 통일사업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대권도전의 밑거름을 뿌리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친문을 대표하는 제3후보의 최대 변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입니다. 정세균 임종석 후보군은 모두 호남출신이지만 유 이사장은 대구 영남출신입니다. 친문세력이 전통적으로 ‘영남주자’에 관심을 보여 왔고, 그것이 곧 대선의 필승 공식으로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유 이사장의 ‘출신 지역’은 정치공학적으로 상당한 이점입니다. 여기에다 유 이사장은 친문의 ‘리더’라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어용 지식인’으로 자처하며 정치를 떠나있지만, 그가 알릴레오를 통해 친문세력에게 현실정치에 대한 ‘좌표’를 찍어주고 장외에서 친문세력을 사실상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감은 남다릅니다. ‘노무현의 마지막 동반자’로도 인식되고 있는 유 이사장이기에 친문이 가지는 ‘적자의식’은 꽤나 높습니다.  

유 이사장이 거듭 정치에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내년 보궐선거 패배로 친문에 위기감이 확산될 때 ‘유시민 등판론’이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이에 유 이사장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또한 본인이 아니더라도 유시민 이사장이 ‘좌표를 찍는’ 인물이 제3의 후보로 유력하게 떠오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실 유 이사장은 그동안 ‘호·불호’가 극강으로 엇갈리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지지세력이 많은 만큼 그를 적대시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김영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친노 유시민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저토록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며 ‘디스’를 가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 이사장은 일부로부터 비호감 정치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각종 예능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유 이사장의 이미지는 ‘비호감’에서 ‘신뢰 가는 지식인’으로 차츰 변하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친밀한 스타일로 바뀌려고 본인도 많이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대중성 확보가 친문세력이 유시민 이사장을 위기 시 구원투수로 호출하는 좋은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김경수 지사 낙마 이후 여권에서 퍼지고 있는 제3후보론은 바꾸어 말하면 ‘이낙연 비토론’ 정서의 대변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대표가 불과 몇 달 사이에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라 현재의 대권구도 판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음’에 불과합니다. 친문이 아직 ‘결재’를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이낙연 대표는 친문의 재가를 앙망하며 더욱 급해질 것입니다. 일찍이 판세에 끌려가며 대권을 차지한 대선후보는 없었습니다. 이낙연 대표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친문의 울타리를 뛰쳐나와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대권은 누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