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달리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 조금씩 물들어가는 가로수를 볼 때마다 어느새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사실 가을은 사람들의 옷차림보다도, SNS에서 먼저 알 수 있다. ‘2020 가을 단풍 성지’ ‘가을 감성 뿜뿜, 국내 억새 핫플’ ‘핑크뮬리 인생샷 명소’ 등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게시물만 훑어봐도 우리나라 가을 여행지를 다 다녀온 느낌이다.
특히 몇 해 전부터 눈에 뜨이는 게시물은 ‘핑크뮬리’다. 고운 분홍빛으로 가득한 사진을 보자마자 감탄사가 나왔다. “여기 어디야?”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을 테다. 그래서인지 저 먼 미국에서 건너온 핑크뮬리는 우리나라 땅 곳곳에 심어졌다. 관광객 유치, 미관 조성 등의 목적으로 지자체마다 핑크뮬리 심기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결과다. 덕분에 서울 도심지부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축구장 약 14개 규모 이상의 핑크뮬리 군락지가 생겼다.
가을이 되면 대접받던 핑크뮬리가 몇 년 만에 위상이 바뀔 처지다.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송옥주 의원실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핑크뮬리는 지난해 12월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지정된 식물이다. 환경부는 지자체에 무분별한 식재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핑크뮬리는 본래 미국 서부나 중부의 따뜻한 평야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조경용으로 재배되기도 한다. 이 식물이 우리나라에서 위해 식물로 지정된 것은 국립생태원이 실시한 ‘외래 생물 정밀조사’ 결과 때문이다. 토종 생태계 교란을 줄 수 있어서인데, 아직 토착 식물과의 경쟁에서 핑크뮬리의 우위가 확인되지 않았고 식물 다양성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적어 1급이 아닌 2급으로 지정됐다. 물론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생물이다.
그럼에도 핑크뮬리 사랑은 여전하다. 한 지자체는 권고를 무시하고 생태공원에 핑크뮬리 군락지를 확대 조성했으며, 서울 시내 대형 백화점에서는 핑크뮬리 가든을 운영 중이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국가정원에서는 핑크뮬리 군락이 올해도 펼쳐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진 찍느라 핑크뮬리를 밟고 훼손해 문제가 된다는 뉴스가 나왔었는데, 이제는 그 식물이 생태계를 위협할 수도 있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그 복구와 복원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찾지 않는다면 잊힐 것이다. 핑크뮬리가 제2의 ‘가시박’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