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여성학 도입 등 큰 업적 남겨
부모성 함께쓰기 1호·호주제 폐지·민주화 운동 등 앞장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1세대 여성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4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이화여대와 미국 앨라배마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1957년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모교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하면서 교수로 부임했다.
1963년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7년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하는 등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 도입·연구에 힘쓰는 한편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의 활동을 하며 한국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한국사회학회장, 한국가족학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항쟁 때는 광주 학살을 자행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이후 복직해 1990년 퇴임했다.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한국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 온 이이효재 선생은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에 힘써 불평등한 여성들의 현실을 이론화했다. 또한 분단된 우리나라의 역사가 여성과 가족,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에 천착해 분단사회학을 개척했고, 수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겼다.
한국여성운동의 역사라 일컬어지는 이이효재 선생의 발자취는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부모성 함께 쓰기 1호 선언자,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례대표제 도입, 50% 여성 할당, 차별 호봉 철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 평화통일운동 등 여성운동 현장에서 평생을 헌신하며 선구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했다.
1990년대 초 북한 방문으로 남북한 여성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었으며, 이후 여성들이 주도하는 통일 논의의 토대를 만들고, 군축과 통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도 매진했다.
이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에 참여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은퇴 후인 1997년부터는 고향에서 지역 여성들과 함께 '기적의 도서관'을 운영했다.
유족으로는 딸 이희경, 동생 이은화(전 이화여대 교수), 이효숙, 이성숙, 올케 이부자 씨가 있다.
장례는 여성장으로 치르며, 빈소는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이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이천 에덴낙원이다.
한편 추모식은 5일 저녁 7시에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에서 엄수되고, 한국여성단체연합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