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집행유예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사기꾼으로 살 수 없어 2심 진행
'유배생활' 5년 동안 하루종일 그림 그리고 책 쓰고···그림은 계속 그릴 것
화가의 ‘화(畵)’와 가수의 ‘수(手)’ 합친 ‘화수’로 불리고, 그렇게 살고 싶어

지난 8월부터 1년간 총 네 번의 콘셉트로 전시를 진행하는 충남 아산갤러리에서 조영남을 만났다. 그의 작품 '겸손은 힘들어'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한 조영남. / 김수진 기자
지난 8월부터 1년간 총 네 번의 콘셉트로 전시를 진행하는 충남 아산갤러리에서 조영남을 만났다. 그의 작품 '겸손은 힘들어'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한 조영남. / 김수진 기자

2016년 ‘조영남 미술품 대작 사건’ 이후 2020년 대법원 최종 무죄 판결까지 약 5년여 동안을 조영남은 ‘유배 생활’이었다고 회고한다. 지난했을 시간 동안 조영남은 수백 점의 그림을 그렸고, 책 두 권 분량의 원고를 빨간 펜으로 직접 쓰고 고치기를 거듭했다.

지난 6월 무죄가 최종 확정된 이후, 그는 7월 현대미술에 관한 조영남의 자포자기 100문 100답이라는 부제를 단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을 펴냈고 8월에는 충남 아산의 아산갤러리에서 미술품 대작 사건 이후 약 5년여 만에 ‘현대미술가 조영남의 예술세계’라는 장장 1년짜리 전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향했던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듯, 9월에는 서울 강남구 피카프로젝트 청담본점에서 '아트, 하트, 화투 그리고 조영남' 전시회를 선보였다. 이어 시인 이상을 향한 애정을 내비친 ‘보컬그룹, 시인 李箱과 5명의 아해들’ 책을 출간했고, 동명의 전시회를 서울 강남구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열고 있다. TV조선의 예능 프로그램 '뽕숭아학당'에 송창식, 김세환과 함께 쎄시봉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자신을 아마추어 작가라고 말한 조영남은 그러나 “미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애호가인 나를 5년간의 법적 공방으로 국가가 진정한 화가로 인정해 준 것 같다. 오히려 국가에 고맙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화가와 작가 그리고 가수, 그 경계선의 조영남을 만났다.

Q 5년 만에 대작 의혹에서 벗어났다. 감회가 궁금하다.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친구들은 집행유예니까 괜찮다고 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죽을 때까지 사기꾼으로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 2심을 진행했고, 무죄 판결이 났다. 검찰에서 대법원에 상고를 했고,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내 생각이 받아들여졌구나 생각했다.

Q 공청회에서 한 최후 진술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판결을 앞두고, 공청회에서 5분 동안 최후 진술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침착하게 준비한 것을 읽었는데, 5년간의 설움이 북받쳤나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 화투 그림에서 화투를 어떻게 그렸느냐보다 그림마다 딸린 제목에 주목해달라고 말했고,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사회에 보탬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기를 청했다.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화투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 내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 보다 라고도 말했다.

Q 찬반 논란이 됐던 ‘조수 기용’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조각은 물론 회화 역시도 조수들을 많이 고용한다.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 같은 작가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조수가 그려온 그림에 색을 덧칠한다든지, 명암을 넣는다든지 등 마무리 작업을 했다. 조수가 화투를 그렸으면, 그 그림은 조수의 것이다. 내가 화투를 그려오라고 지시를 했고, 그 작업에 대해 돈을 받았다면 그것은 노동으로 끝이 난 거다.

그래서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검찰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다. 5년이나 걸린 건 그 때문이다. 아산갤러리에서 내년 8월까지 분기별로 네 번의 다른 콘셉트로 전시를 진행하는데, 세 번째 분기 때는 조수 10명 정도를 공개적으로 뽑아 방송에도 내보내고, 함께 협업해 작품도 만들 계획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미술은 조수하고 함께 하는구나’라고 알게 될 것이다.

충남 아산갤러리에서 조영남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위),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된 출판 기념회에서 조영남이 이상의 시에 직접 음을 붙인 '이런 時'를 노래하고 있다(아래). / 김수진 기자, 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충남 아산갤러리에서 조영남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위),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된 출판 기념회에서 조영남이 이상의 시에 직접 음을 붙인 '이런 時'를 노래하고 있다(아래). / 김수진 기자, 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Q ‘유배 생활’이라고 표현했던 5년 동안 어떻게 보냈는가?
사기꾼으로 취급받으며 사회에서 매장 당했던 긴 시간이었다. 내 취미는 낚시도, 등산도, 바둑도 아니다. 극장 가서 영화 보고, 친구들과 만나서 어울리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바빠서 조수를 고용하고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렸을 텐데, 지난 5년 동안은 하루 종일 그림도 그리고, 책도 두 권이나 썼다. 누군가 내게 ‘계속 그림을 그릴 거냐’고 물었는데, 그림과 나를 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Q 두 권의 책을 썼다. 어떤 책인지 소개해 달라.
2007년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쉽게 썼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쉬운 책을 쓰고 싶었다. 사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보니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님도 미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은 그렇게 100개의 질문과 100개의 답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은 60여 년 넘게 품어온 이상 시인에 대한 내 애정을 듬뿍 담아낸 책이다. 3년 전인가 우연히 말러 교향곡 제3번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왔다. 그 전율을 잊을까 서둘러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 작품이 ‘이箱과 친구들’이다. 책은 이 그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문학과 음악을 대표하는 이상과 말러. 여기서 더 나아가 미술의 피카소, 철학자 니체, 천재 아인슈타인을 등장시켰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다섯 명을 보컬그룹으로 만들어 오디션을 보게 하고, 이상의 시 ‘이런 時’를 가사로 삼아 노래를 작곡, 멤버들은 이 노래로 공연을 한다. 전작과 비슷하게 이번에는 딸과의 문답 형식으로 썼다. 누구나 쉽게 읽히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2010년 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 해설집인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펴냈었다. 탄생 110주년을 염두해 책을 출간한 것은 아니지만, 시기가 우연히 맞아떨어졌다.

조영남은 컴퓨터 대신 직접 종이 위에 글을 쓰고 수정한다.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책을 위해 만들어진 파일만 37개다. 그는 ‘이 책이 내 평생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작업했다고 말한다.  / 김수진 기자
조영남은 컴퓨터 대신 직접 종이 위에 글을 쓰고 수정한다.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책을 위해 만들어진 파일만 37개다. 그는 ‘이 책이 내 평생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작업했다고 말한다. / 김수진 기자

Q 전시회에서는 어떤 그림들을 선보이는가.
아산갤러리에서는 분기별로 총 4부에 걸쳐 그림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1부 주제는 ‘손가락 말고 달 쳐다보기’다. 기존 작품에 5년간 새로 그린 40여 점을 더했다. 대작 사건으로 회수한 작품도 볼 수 있다. 피카프로젝트 청담본점에서는 처음 미술을 공부하던 19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다양한 그림을 전시한다. 일종의 회고전이라고 볼 수 있다.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는 ‘시인 이상 탄생 110주년 기념전’을 한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친 그에 관한 그림을 모았다.

Q 화가로서의 조영남, 가수로서의 조영남.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
사실 미술하고 음악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음악은 시작부터 끝까지 엄격한 규칙으로 이루어진다. ‘이 망할 놈의' 미술에는 규칙이 없다. 자유롭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둘 모두를 예술로 친다.

나한테는 그림이나 미술이나 똑같다. 미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하고,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미술을 깊이 알아야 한다. 화가의 ‘화(畵)’와 가수의 ‘수(手)’를 합친 ‘화수’로 불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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