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의사 파업 때 간호사 격려로 의사들 간접 비판
대통령 의중 옮기는 과정서 참모의 정무적 판단 들어간 듯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 간호사 격려 메시지를 놓고 정치권이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간호사 격려한 글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여야가 핏대를 세우며 싸워야 하는 일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재 확산으로 경제가 피멍이 들어가고 있는 이때, 여야가 또 이렇게 얼굴을 붉히게 되면 추경에 대한 논의 분위기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민주당과 청와대로서는 다분히 꼬투리잡기 식인 야당의 공세에 감정의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고 협치를 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야당은 야당대로 문 대통령의 일방적인 편 가르기가 오로지 친문 지지층이 웃을 일만 한다며 여당을 몰아붙입니다. 여야가 싸워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론은 더 분열되고 코로나19 사태 극복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코로나 경제 폭망’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한숨소리만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일단 문 대통령의 워딩을 한번 보겠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공의 등 의사들이 떠난 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분들을 위로하며 그 헌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라고 썼습니다. 또한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느냐”라며 “진료 공백으로 환자들의 불편이 커지면서 비난과 폭언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한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가중된 업무 부담, 감정노동까지 시달려야 하는 간호사분들을 생각하니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오얏나무 아래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한 속담이 떠오릅니다. 문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글이 의사 파업이 아닌 때에 공개됐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의사들의 파업 때문에 간호사들이 더 큰 짐을 떠안게 되었다고 넌지시 표현한 것은 결국 의사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게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글에는 상황의 맥락이 있습니다. 이 글은 의사의 파업이 거의 최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나온 것입니다.
누가 봐도 간호사의 격려 글 행간에서 의사들의 이기적인 파업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계 동료인 간호사들을 내팽개치고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달려들어 간호사들이 더 힘들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하필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있을 때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간호사들을 격려하는 글을 올려야 했을까요? 이는 경위야 어찌됐든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하는 대통령의 언행으로서는, 사려 깊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더 나아가 의사들의 파업을 이기적으로 몰아가 여론을 휘저어보려는 청와대의 얄팍한 술수까지도 엿보입니다.
이후 문 대통령의 글에 3만개가 훌쩍 넘는 댓글이 달리고 대부분이 대통령의 편 가르기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청와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면서 이 문제는 엉뚱한 방향으로 파편이 튀게 됩니다. 청와대는 어물쩍 넘어가려 했지만 야당의 공세와 여론이 악화되면서 할 수 없이 해명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됐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청와대가 처음 문 대통령의 진의와 달리 참모들이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편 가르기 논란을 일으킬만한 자극적인 표현이 포함됐다고 ‘변명’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문 대통령이 직접 쓴 게 아니고 아래 참모들이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글을 잘못 썼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민정 의원이 청와대 부대변인 시절 밝힌 대통령이 직접 SNS 글을 쓴다고 주장한 것과는 배치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진의가 곡해되었을 수도 있겠다’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아래 참모들까지 끌어들여 대통령을 지키려다 대통령과 참모가 싸잡혀 더 큰 비판을 듣게 됐습니다. 대통령은 거짓말쟁이로, 참모들은 무능한 스태프로서 말입니다. 청와대는 일부 언론의 ‘참모들의 대필’ 보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강하게 부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참모들의 대필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오늘(4일) 아침 민주당과 의사협회가 극적으로 협상 타결을 이뤄 의사들의 파업도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항간에는 정부의 의료개혁 전격 추진을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온 바 있습니다. 청와대가 코로나19로 모두들 정신이 없을 때 의료개혁을 어물쩍 추진하려다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파업까지 하게 되면 민심이 의사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깊은 협상 없이 어수선한 틈을 타 일사천리로 의료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이 예상보다 강력하게 저항하고, 민심도 ‘왜 하필 이때 의료개혁을 추진하느냐’는 쪽으로 흘러가자, 정부는 민주당을 내세워 부랴부랴 의사협회와 원점 재협의를 선언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공의대 추진에 대해 지방의 ‘표’를 모을 수도 있다며,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야당에서는 의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의료적폐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부는 못해도 의식 있는 진보성향의 친 정권 의사’들을 양산하려 했다는, 다분히 정치적 음모론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의사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는 더욱 여론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감성 메시지를 통해, 의사들을 의료계 동료들을 내팽개치고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간호사들과도 편 가르기를 해 의사들의 입지를 폭삭 주저앉히겠다는 정무적 판단을 했을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간호사 격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의구심은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번 간호사 글이 나온 과정을 보면,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오전 참모들에게 열악한 방역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격려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에는 의사와 간호사를 편 가르기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극적인 표현들이 포함됐었다고 합니다. 이 글이 올라간 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번 간호사 격려글은 대통령의 통상적인 격려와는 너무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통상적으로 대통령의 메시지는 연설비서관, 기획비서관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광복절 경축사 등 공식 행사 연설은 주로 연설비서관이 맡은 뒤 문 대통령이 수정을 하고, 수석·보좌관 회의 등 청와대 내부 회의 발언은 기획비서관실이 주로 담당하는 식입니다. 이번 글은 기획비서관실이 맡아 작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청와대 참모들이 문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의중을 지시 받고 이 기회를 이용해 의사들을 함께 ‘디스’해보려는 정무적 판단을 했을 수 있습니다.
고민정 의원, 정청래 의원 등이 문 대통령을 적극 감싸고, 청와대도 아랫사람들이 쓴 글이라며 자복을 하는 것도 바로 참모들의 ‘오버 메시지’의 실수와 파문을 인정하는 꼴로 보입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진의는 간호사들 근무 환경이 나쁜 것이 안타깝다며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라며 “대통령은 진심으로 걱정한 것인데 마지막으로 메시지가 나갈 때까지 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참모들 전부의 잘못”이라고 말해 이런 해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참모들의 대통령 메시지 ‘대필’ 과정에서 의사파업을 비판하는 정무적인 마사지도 함께 이뤄졌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실 최근 야권의 문 대통령 비판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도 문 대통령 공격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탄핵으로 지금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비교하며 공격을 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요즘 많은 분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면서 “‘레이저’라는 별명이 붙었던 전임 대통령(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빛을 닮아간다”고 비꼬았습니다.
‘조국흑서’의 공동저자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박근혜 그분은 아는 게 하나도 없고 무능의 원단이지 않나. 좋은 점은 무능한데다가 또 게으르셔서 아무 일도 안 하셨다. 그래서 그냥 시스템대로 국가가 돌아갔다. 그런데 문 대통령께서는 지금 현재 무능한데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보인다. 그래서 그게 오히려 더 안 좋은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청와대로서는 뼈아픈 대목입니다. 하필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를 당하니 말입니다. 이런 와중에서 터져 나온 문 대통령 간호사 글에 대한 편 가르기 비난은 청와대가 더욱 발끈하는 촉매가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점점 국정운영에 자신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강도’로 대응해도 될 사안까지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 측근들까지 벌떼처럼 나서서 맞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극복에 쓸 힘을 쓸데없는 일에 일일이 맞서며 체력소모를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