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도야 우지마라'는 임선규의 희곡을 1936년 7월25일부터 31일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 <동양극장, 현재 서대문 문화일보 자리>에서 전속극단 <청춘좌>가 초연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삽입곡으로, 이서구 작사, 김준영 작곡, 김영춘의 노래이다.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1939년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같은 해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앞면에는 주제곡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뒷면에는 삽입곡 ‘홍도야 우지마라’를 수록하였다. 그런데 주제곡보다 삽입곡이 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오빠 철수와 순이는 가난해도 의좋은 남매였다. 그런데 오빠가 학자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해야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자, 순이는 아무도 모르게 요정에 나가 기생 홍도가 되어 오빠의 학비를 댄다. 그런데 홍도는 오빠 친구 광호와 사랑하는 사이로 광호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하였으나, 광호가 외국 유학을 떠나자 사단이 벌어진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홍도의 과거를 눈치채고 여기에 모함까지 더하여 그녀를 쫒아낸다. 유학에서 돌아온 광호는 나약한 태도로 부잣집 딸 혜숙과 약혼 날짜를 잡는다. 광호의 귀국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던 홍도는 이 소식을 듣고 약혼식장으로 뛰어가 얼떨결에 약혼녀를 칼로 찌르게 된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기구한 운명이란 말이냐?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 살인범 홍도의 팔목에 차디찬 쇠고랑을 채워야만 하는 순사는 다름 아닌 홍도의 덕으로 학업을 마치고 순사가 된 오빠 철수였던 것이다.
그 후 작품에 따라 오빠의 직업이 순사에서 검사·판사로 둔갑하기도 하는데, 형사소송법상 검사·판사에게는 친족의 범죄에 대해서 기피·회피·제척의 사유가 되어 수사나 재판을 못하게 되어있지만, 신파극에서는 허용되어야만 신파 특유의 맛을 더할 터.
그런데 이처럼 뻔한 스토리가 당대에 먹혔던 것은 일제강점기 핍박받던 민중들에게는 홍도가 자신들과 같은 처지로, 남편 광호와 새 약혼녀 혜숙은 신지식인 기회주의자로,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일제 권력으로 치환되어, 대리 울분의 공감대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라 본다.
이 희곡을 쓴 무명작가 임선규(1912~1970, 본명 임승복)는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가 되어 당대 최고의 여배우 문예봉(1917~1999)과 결혼한다. 그 후 문예봉은 월북하여 북한 인민배우가 되었는데, 임선규도 문예봉을 따라 월북한다.
이제 대중들에게는 낯선 이서구 작사, 김준영 작곡, 남일연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가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1절) 거리에 핀 꽃이라 푸대접 마오/ 마음은 푸른 하늘 흰 구름 같소/ 짓궂은 비바람에 고달퍼 운다/ 사랑에 속았다오 돈에 울었소// (2절) 열여덟 꽃봉오리 피기도 전에/ 낙화란 왠 말이요 야속하구려/ 먹구름 가시며는 달도 밝겠지/ 내 어린 이 순정을 바칠 길 없소// (3절) 사랑도 믿지 못할 쓰라린 세상/ 무엇을 믿으리까 아득하구려/ 눈물도 인정조차 설운(서러운) 사정도/ 가슴에 주서(주워)담고 울고 말았소//
가사의 시적 자아는 홍도이다. 즉 홍도의 입장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를 부른 남일연은 191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는데, 예명 ‘울금향’의 울금은 튤립의 중국식 표기이다.
이제 ‘홍도야 우지 마라’의 가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SP판 B면 ‘홍도야 우지 마라’를 유성기에 올려놓으면,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이런 대사가 먼저 흘러나온다.
“머지 않은 옛날 구한말 개화시대에 철수란 대학생과 순이라는 여동생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정한 남매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배움을 뒷받침할 돈이 없어 순이는 이름까지 홍도라 바꾸고 홍등가에서 뭇사내들에게 웃음과 노래를 파는데…”
이는 초보적 음악극 ‘스케치’ 형식에 따른 구성이다.
(1절)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절)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네 마음 네 행실만 곱게 가지면/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이 가사의 시적 자아는 오빠 철수이니, 오빠의 입장에서 바라본 동생 홍도에 대한 당부이다. 자신의 학비를 대기 위해 기생이 되고 살인범까지 된 동생에게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네 마음 네 행실만 곱게 가지면…” 등 지금 보면 ‘유체이탈 언어’를 사용하는 오빠의 철면피한 당부가 가소롭기 그지없다. 전형적인 여성 수난극으로, 우리나라 최루곡(催淚曲)의 원조격이라 하겠다.
이 노래를 부른 김영춘(1915~2006)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이 곡 외에도 ‘항구의 여자’, ‘포구의 여자’, ‘버들잎 신세’, ‘청춘 마차’, ‘남국의 달밤’, ‘바다의 풍운아’ 등이 있다.
두 노래의 작사가 이서구(1899~1981)는 남궁춘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 극작가이자 방송작가이자 연출가이자 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작사가로는 이고범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김기진·박동희 등과 극단 토월회를 창립하였다. 쉰 세대의 귀에 익은 <장희빈>, <강화도령>, <민 며느리> 등의 연속극 드라마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 평론을 통해 일제 문화통제 정책을 옹호하는 오점을 남겼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갑남을녀와 달리, 대저(大抵) 재주가 많은 지식인일수록 시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항심(恒心)을 잃기 쉬운 법이다.
두 노래의 작곡가 김준영(1907~1961)은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일본 도요 음악학교를 졸업한 피아니스트이다 대표작은 이 두 곡 외에도 약동적인 안땅장단(‘옹해야’처럼 보통 속도로 박력있고 경쾌한 민속음악 장단)의 ‘처녀총각’이 있는데, 이 노래는 1950년 대에는 ‘봄타령’으로, 1970년 대에는 ‘새봄을 노래하네’로, 또 ‘청춘타령’은 해방 후 에 ‘금수강산 우리 조국’으로 다시 편곡되어 취입되었다.
무명작가 임선규가 동양극장 연출가 박진에게 퇴짜를 맞은 희곡의 원제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동댕이쳐진 대본을 본 동양극장 사장 홍순언이 감(感)이 와서 무대에 올리게 되었을 때, 자존심이 상한 박진에 의해 바뀐 제목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대중들의 심사를 건드려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연일 <만원 사례>가 붙은 극장 유리문이 깨질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어, 공연시간이 다가오면 동양극장 앞 서대문에 전차가 못 다녔다고 한다.
오빠 역의 황철(1912~1961)은 충남 청양군수 아들로 태어난 인기 배우로, 차홍녀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여배우 문정복과 결혼을 한다. 문정복은 여배우 문정숙(남편 이만희 감독의 ‘만추’ 주연배우)의 언니로, 탈렌트 이혜영의 이모이기도 하다. 홍도 역의 차홍녀(1915~1940)는 동두천 출신으로 황철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스물 다섯의 나이에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4막 5장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주제가가 선풍적 인기를 끌자 아예 작품명을 <홍도야 우지마라>로 바꾸어 계속 신파극으로 올려졌다. 또 1965년 전택이 감독이 김지미·신영균·이수련 주연으로 영화화하였으며, 연속극 드라마<아들과 딸>에서는 백일섭이 술 한잔 얼큰하게 걸치면 손바닥을 탁! 치며, “아 글씨,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를 불러, 이 노래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였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처럼> 하나의 원형 콘텐츠로 연극·영화·음반·출판·에니매이션·캐릭터·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변용하여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문화산업 기본 전략을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 OSMU)라고 한다.
*만담가 장광팔은...
본명은 장광혁. 1952년 민요만담가 장소팔 선생 슬하의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의 전통 서사문학 만담과 대중가요 가사연구에 대한 글쓰기와 만담가, 무성영화 변사,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서사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