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식탁 위의 혁명-지속 가능한 맛의 시대
전통과 혁신의 만남-새로운 퓨전 철학
미지의 맛-보이지 않던 문화의 발견

요즘 밥의 전분기를 빼 당 섭취량을 줄이고 칼로리를 낮춘 ‘저당 밥’이 유행이다. 소쿠리에 쌀을 담아 물에 찌듯이 지은 저당 밥은 부슬부슬하고 푸석한, 마치 찐 밥 같은 식감이다.

한때는 하얀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영양분을 덜어내며 ‘덜 먹는 법’을 연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 전 세계의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끼니마다 하나의 선택을 통해 지구의 미래와 건강,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에 투표하고 있다. 한때 음식은 단순한 생존의 도구였지만, 이제는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다.

누군가는 고기를 덜 먹는 이유로 환경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철 식재료를 고집하며 지역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이 변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조용한 일상의 혁명이다. 마트의 진열대나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보면 그 변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20세기의 미식이 “새로운 맛의 발견”이었다면, 21세기의 미식은 “지속 가능한 맛의 재발견”이다.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더할까’보다 ‘무엇을 덜어낼까’를 고민한다. 그 중심에는 환경, 윤리,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영양분을 덜어낸 저당 밥 /픽사베이
영양분을 덜어낸 저당 밥 /픽사베이

식탁 위의 혁명 ― 지속 가능한 맛의 시대

플랜트 베이스드(plant-based) 식단은 더 이상 ‘채식주의자들만의 문화’가 아니다. 뉴욕의 스타 셰프들이 콩 단백질로 만든 ‘가짜 고기’ 스테이크를 예술적으로 플레이팅하고,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Noma)는 산과 바다의 제철 재료로 지역 순환형 다이닝을 완성했다.

한국에서도 ‘콩치즈’, ‘두부 티라미수’, ‘비건 김밥’ 같은 메뉴가 일상 메뉴판에 오른다. 음식은 점점 더 ‘지속 가능한 미학’을 향하고 있다.

특히 2025년 들어 식품 산업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과 손을 잡았다. ‘버려지는 것의 미학’을 보여주는 셰프들이 등장했고, 당근 껍질, 브로콜리 줄기, 커피박 같은 부산물이 새로운 요리의 주인공이 된다.

로스앤젤레스의 레스토랑 ‘SCRAPS’는 손님이 먹고 남긴 재료로 다음날의 메뉴를 구성한다. 버려지는 음식이 줄어드는 만큼, 셰프의 창의력은 더 빛난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은 서서히 번지고 있다. 서울의 몇몇 카페에서는 ‘못생긴 과일’로 만든 디저트를 선보이고, 강릉이나 여주 등 지역의 로컬 카페들은 농가와 직거래로 제철 재료를 받아쓴다. 음식이 ‘흙에서 식탁까지’의 여정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두부 스테이크 /픽사베이
두부 스테이크 /픽사베이

전통과 혁신의 만남 ― 새로운 퓨전의 철학

한때 ‘퓨전요리’는 단순히 외국 식재료를 섞은 메뉴를 의미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뉴 퓨전(New Fusion)’은 훨씬 더 깊고 성숙하다. 그것은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본질은 지키되 표현을 새롭게 하는 미학이다.

예컨대, 도쿄의 셰프들은 전통 가이세키(懐石)에 저온조리나 발효 기술을 더해 ‘모던 가이세키’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한 한식 레스토랑은 ‘된장 마카롱’, ‘김치 라비올리’를 선보이며 한식의 발효 감각을 서양의 섬세함으로 해석한다.

전통은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늘 현재와 대화하며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진화한다.

김치를 넣은 라비올리 /픽사베이
김치를 넣은 라비올리 /픽사베이

미지의 맛 ― 보이지 않던 문화의 발견

이제 세계의 미식가들은 더 이상 파리, 뉴욕, 도쿄만 찾지 않는다. 이제는 ‘미지의 맛’이 새로운 트렌드다.

서아프리카의 수프 에구시(Egusi), 레바논의 병아리콩 요리 무사카, 페루의 세비체와 그리스의 타라모살라타가 세계적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오른다.

서아프리카의 에구시(Egusi), 레바논의 병아리콩 요리 무사카(Moussaka), 페루의 라임즙에 절인 생선요리 세비체(Ceviche), 그리고 그리스의 전통 요리인 타라모살라타(Taramasalata)가 세계적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오른다.

각기 다른 대륙의 전통음식들이 이제 미슐랭 레스토랑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세계의 식탁은 국경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지역성의 언어로 새롭게 쓰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SNS가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푸드 트래블러’가 될 수 있고, 작은 마을의 전통 음식이 하루 만에 세계의 관심을 받는다. “맛의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음식 문화는 거대한 이념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먹는 한 끼의 방식이 지구의 내일을 바꾼다. 음식은 더 이상 사치도, 유행도 아닌 하나의 책임이 되었다.

다음 회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한국의 식문화와 외식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한식의 세계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지속 가능한 미식, 그것은 결국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맛이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 foodnetwor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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