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광고 처벌 기술 기준 정립 필요
온도·습도 센서형 ‘AI 냉풍’ 등 다수
학습·추론 없는 시스템은 AI 아냐
'어텐션 버퍼' 여부, 지능 최소 요건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 여성경제신문DB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 여성경제신문DB

공정거래위원회가 단행한 ‘인공지능 워싱(AI Washing)’ 시정 조치가 단순한 과장광고 단속을 넘어, 국내에서 ‘AI’라는 용어의 기술적 기준을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가전·전자제품 20건에서 AI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거나 기능 수준이 미비한 사례를 적발해 자진 시정 조치했다고 밝혔다. 온도·습도 센서 기반 자동 제어 기능이 ‘AI 냉풍’, ‘AI 제습’ 등으로 광고된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번 조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정부가 제품 성능 자체보다 “AI라는 표현이 기술적으로 타당한가”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AI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학습·추론·피드백 구조가 부재한 경우, 해당 제품을 ‘AI’로 부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인식 격차가 드러났다. 응답자의 67.1%가 “AI 제품과 일반 제품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답해, 표시 문구와 실제 기능 간의 간극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빅테크 개발자들은 ‘어텐션 버퍼(Attention Buffer)’ 보유 여부를 인공지능의 최소 요건으로 본다. 인공지능(AI)이 문장을 이해할 때는 한 번에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서 최근에 읽은 중요한 정보들을 잠시 담아두는 공간, 즉 작은 기억창고가 필요한데 이걸 어텐션 버퍼(Attention Buffer)라고 한다. 입력된 자극을 임시 저장해 의미를 재구성하지 못하면 자동화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AI’로 포장된 제품 상당수가 사실상 자동화 도구에 가깝다.

음성인식 스피커, 추천 쇼핑앱, 자동 냉난방 제어기, 채용 평가기, 보험상담 챗봇, 자동매매 프로그램 등이 모두 해당한다. 쿠팡·토스·네이버 쇼핑앱 등 다수의 추천·결제·검색 서비스가 ‘유사 AI(Quasi-AI)’ 범주로 분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들 시스템은 입력마다 결과를 재계산하긴 하지만, 연속성을 기억하지 못하고 내부 상태를 조정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단일 입력에만 반응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국내 AI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지적한다. 다수의 기업이 정적 데이터 활용에 집중한 나머지, 사고의 연속성과 내부 상태 업데이트 같은 본질적 지능 설계에는 투자를 미뤄왔다. 한국 산업계에는 AI를 기능 추가나 UX 개선 수준으로 바라보는 관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의 AI 법안(Artificial Intelligence Act)이 위험도 기반 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일본·싱가포르도 기술 정의와 안전 기준을 정교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AI’라는 용어의 사용 조건을 명확히 해 산업의 신뢰성과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과장된 AI 마케팅을 단속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 요건·투명성 기준·검증 체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시그널이 국내 산업이 반응형 자동화에서 진정한 지능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한편 공정위는 내년 중 AI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AI’라는 단어가 기술적 구조로 증명돼야 한다”며 “단순 반응형 알고리즘과, 맥락을 유지하는 인공지능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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