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폭스콘·현대차 먼저 도입
지능 경쟁력이 제조 권력축 바꿔
이재명 AI 방향성 강조한 자리서
일자리 소멸 부를 정책 아이러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SK·LG그룹이 동시에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 도입을 선언한 배경에는 글로벌 제조업의 근본적 변화가 있다. 증설과 장비 중심의 전통적 제조 패러다임이 연산과 데이터 제어 중심의 '지능형 공장'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31일 반도체 업계에선 젠 슨황 엔비디아 CEO 방한 이벤트로 결정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도입과 관련 "행동은 늦었지만 방향은 명확하다"며 "이미 공장이 자동화를 넘어 생산 시설에서 학습하고 예측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변화의 속도가 실감난다. BMW는 실제 공장을 짓기 전에 가상 공장에서 먼저 생산을 시작한다. 설비 배치, 작업자 동선, 로봇 작동 각도까지 디지털 환경에서 최적화한 뒤 현실 공장에 적용한다. 현실 공장은 사실상 가상 환경의 복제본이다.

한 제조업계 전문가는 "BMW는 물리적 공장 건설 전에 디지털 트윈에서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며 "설계 단계에서 이미 최적화가 끝난 상태로 현장에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폭스콘은 생산라인 전체를 디지털로 복제해 운영한다. 결함 발생 경로를 사전에 예측하고, 공급망 충격을 시뮬레이션한다. 기계가 실제로 고장 나기 전에 데이터가 먼저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를 '예측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라고 부른다. 부품 교체 시점을 사후가 아닌 사전에 결정하는 방식이다. 한 엔지니어는 "기계가 멈추기 전에 교체 부품이 이미 준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미국 조지아 공장은 아에 건물보다 서버 인프라부터 구축했다. 이런 디지털 트윈에선 작업자는 로봇과 단순 협업하는 게 아닌 전체 생산 시스템 안에서 동선이 최적화된 변수로 존재한다. 한 자동차 산업 애널리스트는 "현대차는 공장은 자체적으로 생산 시스템을 설계한다"며 "물리적 구조는 디지털 설계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관계자가 증강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동차 디자인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관계자가 증강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동차 디자인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공장을 단순 자동화 시설이 아닌 '지능 모델'로 본다는 점이다. 생산 프로세스의 변수들의 상호 작용을 계산하는 뇌를 그래픽카드(GPU) 병렬 연결로 구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생산 함수 전체가 데이터 기반 연산 체계로 전환되는 것이다. 필요한 GPU는 수만개 단위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반도체 공장의 수율은 온도와 시간 같은 개별 변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수백·수천 개의 공정 요소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며 최적 조건을 스스로 찾아가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결국 젠슨 황의 이번 제안은 단순히 반도체를 더 팔기 위한 것이 아닌 연산 능력이 곧 공장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공식화한 선언에 가깝다.

빅테크 업계 관계자는 “4대그룹이 이 방향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국 제조업은 전통적 하드웨어 산업에서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전환된다”고 말했다. 결국 이는 고도 자동화와 예측형 생산 체계 확대로 이어져 기존 제조 일자리 구조의 직접적 충격이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AI 방향성을 이끌겠다고 언급한 자리에서 급격한 일자리 소멸 가능성이 예고된 셈이다.

디지털 트윈은 한번 도입되면 정부가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설계가 현실을 따르는게 아닌 현실이 설계를 따르게 된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승자는 데이터 기반 생산 체계를 먼저 구축한 기업이 될 것"이라며 "삼성과 SK를 필두로 한국 제조업도 이제 학습하고 예측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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