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IAEA 추가의정 14조 분석 결과
韓 원자력협정·핵연료 통제 논의 안돼
美 자국 방산 OEM 참여 허용 가까워
호주, 글로벌 질서 내 절차·검증 통해

미국의 핵잠수함 코네티컷호가 2021년 7월 31일 일본 요코스카에 입항하고 있다. /미국 해군
미국의 핵잠수함 코네티컷호가 2021년 7월 31일 일본 요코스카에 입항하고 있다. /미국 해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사의 미국 내 핵추진 잠수함 건조 참여를 승인했다고 밝힌 가운데, 이번 발표가 독자적 ‘핵주권’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여성경제신문이 깐깐한 팩트 탐구 코너를 통해 호주의 사례를 바탕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제도 조항과 외교 절차를 검토한 결과, 호주의 핵잠수함 확보 과정은 ‘미국 승인’에 앞서 국제 규범·검증 체계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한국의 경우와 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호주는 먼저 IAEA 포괄적 안전조치 체제 안에서 비핵보유국이 군사용 핵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예외 절차를 제도적으로 열고, 이를 공식 적용받기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이는 미국의 양해에 기대는 한국의 접근 방식과는 다른 국제 규범에 편입된 절차와 검증을 통해 핵추진 능력을 확보한 구조였다.

2021년 9월 15일, 호주·미국·영국은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위한 18개월 연구 개시를 공동 발표했다. 같은 날 IAEA 사무총장은 이사회에 “포괄적 안전조치협정(CSA) 하에서 군사용 핵물질에 대한 사찰 제외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보고했다. 이후 호주는 IAEA에 Article 14 합의 협의를 착수했다는 문서를 제출했다.

비확산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구조를 스스로 설계한 것이다. IAEA는 “Article 14 합의가 체결되기 전에는 미국·영국이 호주로 핵물질을 이전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IAEA 이사회 보고서에는 호주가 포괄적 안전조치협정과 추가의정서(AP) 체제 하에서 정보 제공 및 접근을 수용하고, 핵물질 전용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절차를 구축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이 허용해서 가능했다”는 위임형 모델이 아니라, 국제 제도에 기반한 ‘규범적·제도적 핵주권 확장’이었다. 호주는 이 과정에서 고농축 우라늄(HEU) 대신 저농축 우라늄(LEU) 또는 봉인형 원자로 모듈을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자국 내 농축·재처리 능력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핵무장 의혹을 선제 차단한 것이다.

이후 IAEA는 관련 절차와 검증 가능성을 공식 검토했고, 국제사회는 비확산 체제를 흔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호주의 요구를 수용했다. 미국·영국의 연료·원자로 제공도 이러한 제도적 안전판이 전제된 뒤에 가능해졌다. 즉 핵잠수함 운용은 국제질서 속 승인이었지, 동맹의 정치적 보증으로 획득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위치한 한화오션의 필리 조선소 전경 /한화오션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위치한 한화오션의 필리 조선소 전경 /한화오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을 향한 발언에는 이런 절차적 조건이 없다. 건조지가 한화오션의 미국 법인으로 특정된 점을 고려하면, 미국 방산 공급망에 한국을 편입시키는 신호에 가깝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현재 한국은 고농축 우라늄 사용이 사실상 제한돼 있으며, 저농축 연료 기반 핵추진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서도 IAEA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핵잠수함은 원자로 설계, 연료 주기, 안전성 검증, 유지·훈련 체계를 포괄하는 고난도 전략 자산이다. 미국 조선소에서 제작될 경우 핵심 기술과 운용권은 미국이 쥘 가능성이 크다. 국방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기술 이전 약속이 아니라 한국 조선 역량을 미국 군수 생태계에 편입시키는 의미”라며 “핵잠수함 ‘도입’과 핵주권 ‘확보’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한다.

핵잠수함 도입이 현실화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 조정, IAEA 감독 체계 설계, 연료 처리 및 반환 규범 마련 등 복잡한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호주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핵잠수함 운용이 가능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당국 관계자는 “동맹 강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독자 핵추진 능력 확보와는 별개”라며 “실행 계획 없이 선언만 반복될 경우 상징적 제스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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