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수육 풍미 가득 면발
한민족의 원조 돼지뼈 국물
세계화 자격 충분 향토 음식
| 전국에 있는 맛집을 드나드는 남자의 후기다. 유명한 곳도, 숨겨진 곳도 간다. 재료와 요리가 탁월하면 선별한다. 주인장이 친절하면 플러스다. 내돈내산이며 가끔 술도 곁들인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입에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 들어가야 정화된다고 믿는다. [편집자 주] |

이름도 정겨운 ‘제주 올래고기국수’ 식당을 천안 골목길에서 발견했다. 문 앞에는 돌하르방이 서있다. 조용한 실내에 은은한 국물 냄새가 감돈다. 제주도까지 가기 먼 사람들이 잘 방문하도록 현지 음식을 재현한 곳이다.
주문한 뒤 물잔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고기국수, 이것이야말로 제주도의 숨은 자랑거리 아니던가. 지친 하루를 달래는 먹거리. 그리고 식탁에서 서로 마주보며 건네는 "폭싹 속았수다" 한 마디. 제주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뜨끈한 고기국수 한 사발이 앞에 놓인다. 푸짐한 양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물 위로 두툼한 수육이 놓여 있고 잘게 썬 파와 깨가 뿌려져 있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어 맑은 국물과 함께 입에 넣으니 구수하면서도 진하다. 곁들여 나온 김치가 역시 최고의 반찬이다. 아삭한 김치 한 점을 국수와 함께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본 돈코츠라멘이 패전 후 장인정신을 담아 인기를 끌었다면, 제주 고기국수는 그보다 훨씬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돈코츠(돈골)의 그 돼지뼈는 조선 땅에서 먼저 식재료로 쓰였다.
오랜 시간 끓여낸 육수는 깊은 맛을 내면서도 돈코츠처럼 지나치게 기름지고 느끼하지 않다. 이게 바로 근본이다. 후추를 뿌리면 칼칼해지고 고추가루를 더하면 매콤해지는 선택지가 있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돔베고기'라 불리는 수육은 숭덩숭덩 넣어져 국물이 눅진하게 스며들었다. 앞다리살과 사태,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히 어우러져 야들야들하다. 보쌈고기처럼 특유의 육향이 섞인 맛이 일품이다.
쫄깃한 면발은 또 어떤가. 뚝뚝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중면의 식감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한다. 밀가루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하다. 후루룩 소리 내며 먹고 있자니 어렸을 적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국수가 떠오른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잔칫날 국수를 대접하며 "국수 먹고 오래오래 살라"는 덕담을 건넸다. 결혼식을 앞두고 "국수 먹으러 오라"는 말이 곧 청첩장을 돌리는 일과 같다. 멸치국수가 흔한데 진정 '탄단지' 영양 만점은 이 제주 고기국수가 아닌가 싶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상임위원장의 딸 결혼식이 화제였다. 축의금 환불이라니, 억지로 했던 부조였던가.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소박한 국수를 대접하고도 모두가 만족했던 그 시절의 낭만이 그립다.
이 한 그릇의 토종 국수에는 한민족의 풍습과 영양학적 지혜가 녹아 있다. 척박한 땅을 일궈 돼지를 키워온 제주 사람들의 끈기가 느껴진다. K-푸드 인기의 선봉에 제주 고기국수가 서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면 요리로 라면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스턴트 제품이라는 한계가 있다. 제주 고기국수는 손수 만드는 정통 한식이다. 그럼에도 아직 대중화가 크게 안됐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지방에 국한된 인식이 강해 제주 외 육지에서는 식당을 찾기 힘들다. 돈코츠라멘에 비해 세계인들이 잘 모르는 이유다.
나는 이 자리에서 꿈꾼다. 먼 훗날 뉴욕 한복판에서,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남미의 거리에서 제주 고기국수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을. 돼지고기를 기반으로 한 이 최상의 누들을 함께 나누길.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