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손주의 웃음에 눈꼬리가 무너져 내리니
평생 원했던 '자유'지만 잠시 내려놓았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려

전업주부였거나 직업을 가지고 있었거나, 여자 나이 쉰을 넘으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한숨 돌리는 시기가 온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늦게까지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도 예전보다 많아졌으나, 그것은 참으로 복 받은 경우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자, 여자를 떠나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제 앞가림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떳떳하다. 평생 일을 놓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을 하며 두 딸을 키울 때,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다. 매인 몸이라는 답답함이었다.

30여 년 전쯤엔 백화점 문화센터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지적 호기심이 강했던 내게 문화센터의 커리큘럼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시원하고 따뜻한 버스를 타고 오가며, 넓고 쾌적한 강의실에서 이런저런 강의를 하루 종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거리는 출근길, 백화점 셔틀버스를 보며 은퇴하면 꼭 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나이가 들수록 ‘계획’이니 ‘관리’니 이런 단어들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퇴 후 그림을 배우고 요가도 조금씩 하면서, 같이 여행 가기를 꿈꾸며 일하는 친구를 기다려 준 벗들과 이런저런 계획에 부풀 때쯤··· 딸아이가 결혼을 했다.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꼭 해야만 넘어갈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만난다. 선택의 여지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새로 열린 문 안에 펼쳐진 세상 /이수미
새로 열린 문 안에 펼쳐진 세상 /이수미

할머니가 되기까지 2년쯤, 꿈에 그리던 문화센터에서 무언가 배우고 강의도 들으면서 내 인생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누렸다. 평생 생활신조인 ‘닥치면 다 한다’를 매일 되뇌며 자신을 준비시켰다.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간의 풍요로움을 모른다. 자유의 소중함도 절실하지 않다. 그 소중한 시간을 무료하고 지루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늘그막에 시작한 두 번째 일, 황혼 육아를 몇 년째 계속하면서 잠깐 맛본 자유를 잠시 ‘유예’시켰다.

훌쩍 떠났다가 훌쩍 돌아오는 자유 대신, 손주의 웃음에 눈꼬리가 무너져 내리는 백발 할미의 유예 선택은 ‘제2의 백화점 셔틀버스’처럼 훗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나간 젊음이나 벌지 못한 돈에 얽매여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법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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