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독일의 랑겐재단 미술관
후원자인 '마리안 랑겐' 부인
건립자인 칼 하인리히 뮐러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합작품
그날, 나는 건축가의 독특한 감각이 돋보이는 두 개의 미술관을 찾았다. 하나는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이고 또 하나는 랑겐재단 미술관이다.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 노이스 지역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미술관이다.
우선 면적이 2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것도 놀랍지만 그 광대한 땅에 15개의 독립된 파빌리온을 지은 것도 색다르다. 미술관을 건립한 '칼 하인리히 뮐러'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 대지의 형태를 바꾸고 나무를 새로 심어 몇 세기 전 자연의 모습으로 미술관 주위를 새로 꾸몄다.

관객들은 잘 조성된 전원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각각의 전시장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작품명과 작가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은 것도 독특하다. 관객들이 편견을 갖지 않고 예술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라는 배려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완성한 뮐러는 미술관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지금은 폐쇄된 나토(NATO)의 미사일 기지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의 설계를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한다. 이것이 랑겐재단 미술관 건립의 시작이다.
미술관이 건축 중이던 2000년 공사가 더디게 진행되자 컬렉터인 '마리안 랑겐' 부인이 재단에 재정적인 후원 의사를 밝혔다. 당시 부인의 나이는 아흔 살이었다. 안도는 노 부인의 의연한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건축을 시작한 지 10년의 세월이 지난 2004년 미술관이 완성되었다.

랑겐재단 미술관은 이중 피막의 구조를 보이는 건축물이다. 콘크리트 건축물 위에 유리가 덮여 있고 그 옆에 있는 인공 호수에 비친 건물의 이미지가 아름답다. 랑겐재단 미술관은 칼 하인리히 뮐러의 의지와 마리안 랑겐 부인의 예술에 대한 사랑, 그리고 걸출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 세 사람의 합작품이다. 미술관이 고요한 숲속에 있어 접근하기가 어렵지만 그래서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우리나라도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며 아직 활용하지 못하는 부지가 있다. 랑겐재단 미술관이 그랬듯이 폐쇄된 군사기지를 문화공간으로 개조하면 어떨까. 요즘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로 적대감을 접고 미사일 기지를 모두 미술관으로 바꾼다면 이보다 더 뜻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여성경제신문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eggtre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