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그래피티 성지, 백색 페인트로 지워져
젠트리피케이션 논란, 뉴욕 예술사에 상흔 남겨
675만 달러 판결, 흑인 문화유산 법적 보호 확인

“We bomb, we bomb…”
우리는 터뜨린다, 우리는 흔적을 남긴다…
“Spray cans in my hand, this is how I talk”
내 손의 스프레이 캔 이게 내가 말하는 방식이다
“Every wall a canvas, every tag a mark”
모든 벽은 캔버스 모든 태그는 나의 흔적
“Queens to Brooklyn, the message travels far”
퀸스에서 브루클린까지 메시지는 멀리 퍼진다
“We bomb the system, write it on the wall”
우린 이 시스템을 폭발시킨다 벽 위에 기록한다
“Voices of the people, never gonna fall”
사람들의 목소리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퀸즈에 버려진 창고 건물을 뒤덮은 현란한 스프레이 벽화가 눈에 띄는 파이브포인츠, 1993년부터 그래피티의 메카가 된 이곳을 배경으로 한 Poe Rilla의 We Bomb 뮤직비디오와 노래 가사에는 이곳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열망이 담겼다.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던 ‘파이브포인츠(5 Pointz)’는 한때 세계 최고의 그래피티 성지로 불렸다. 뉴욕 5개 자치구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을 담아 붙여진 이름 아래 20년 넘게 흑인 힙합 문화와 스트리트 아트가 집결했다.
이 건물은 2013년 한밤중 백색 페인트로 덮인 뒤 이듬해 철거됐다. 지금은 고급 아파트 단지 ‘5Pointz LIC’가 들어섰다.

5 Pointz의 시작은 18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 계량기 공장으로 지어진 건물은 1990년대 초반부터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에게 합법적 캔버스로 제공됐다. 큐레이터로 활동한 메레스 원(Meres One, 본명 조나단 코헨)은 이곳을 ‘세계 최고의 야외 에어로졸 박물관’이라 불렀다.
아티스트들은 7번 지하철 선로 위로 드러난 거대한 외벽에 수주 동안 작품을 완성했고 방문객 수천명이 매년 몰렸다. 단속과 체포의 위협 속에 살아온 흑인·이민자 청년들에게 5 Pointz는 처음이자 마지막 합법적 무대였다.
찬란했던 역사도 잠시 2011년, 건물주 제리 월코프는 40층대 콘도 타워 두 개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승인받았다. 2013년 11월 그는 예술가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건물 전체를 흰 페인트로 뒤덮었다.
수백 점의 작품은 하룻밤 사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당시 월코프는 현지 언론에 “작품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문과도 같아 차라리 하얗게 지워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흑인과 이민자 예술가들의 문화를 덮어버린 행위로 기록됐다.
롱아일랜드시티에 새로운 임대 주택을 건설하기로 한 월코프의 결정은 지난 10년 동안 이 지역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저렴한 임대료와 맨해튼과의 근접성에 이끌려 많은 신규 주민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은 건물 주변에 ‘Gentrification in Progress’라는 경고 테이프를 두르며 저항했지만 철거는 멈추지 않았다.
2017년, 21명의 아티스트들은 월코프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시각예술가 권리법(VARΑ)이었다. 일시적 작품이라도 ‘인정받는 명성(recognized stature)’을 지닌다면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술가들의 주장이다.
2018년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월코프에게 총 675만 달러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도 이 판결은 확정됐다. 그래피티가 흑인 문화의 산물이자 정당한 예술임을 처음 법적으로 확인한 사건으로 남았다.
현재 이 자리는 이름만 이어받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개발사는 일부 저렴한 주택과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포함했다고 주장하지만 흑인 스트리트 문화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맨해튼의 citizenM 호텔 계단에서 새로운 ‘스트리트 아트 박물관’을 꾸리는 예술가들만이 그 유산을 지탱하고 있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5 Pointz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으로 남았다. 낡은 공장을 흑인 예술이 세계적 명소로 바꿔놓았지만 자본이 그 자리를 덮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미국, 뉴욕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