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 뇌 질환 파킨슨병 국내 15만명
2005년 도입된 ‘스타레보’ 마지막 신약
‘오프 시간’ 줄이는 신약 해외서 확산
“삶의 질 위해 치료제 선택권 넓혀야”

국내 파킨슨병 환자가 15만명을 넘었지만 20년째 신약 도입이 이뤄지지 않아 오래된 약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이 약효가 소진돼 몸이 굳는 ‘오프(OFF) 시간’을 개선한 신 치료제를 속속 승인하는 사이 한국은 선택권이 막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파킨슨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퇴행성 뇌 질환으로 고령화 속도에 비례해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손 떨림, 근육 경직, 보행 장애 등으로 일상 기능이 무너진다. 하지만 치료의 핵심인 약물 조절이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에 머물면서 환자들은 약효가 떨어질 때마다 주요 증상이 나타나는 오프 시간을 견뎌야 하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는 주요 약제는 2005년 도입된 ‘스타레보’(레보도파·카비도파·엔타카폰 복합제)가 사실상 마지막 신약이다. 가장 널리 사용됐던 증상 완화제 '마도파정'은 제조사의 자진 품목 취하로 국내 공급이 중단되면서 환자들은 기존보다 20배가량 비싼 가격에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수입해 복용하거나 적절한 대체 약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제네릭인 명도파정이 일부 대체되고 있지만 수요를 온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약제 선택 폭이 좁아지면서 약가 부담과 치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한양태 대한파킨슨병협회 이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파킨슨병 환자에게 가장 힘든 건 약효가 떨어져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오프 시간’”이라며 “약을 오래 복용하다 보면 같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줄어들고 약효가 끊기면 몸이 움직이지 않거나 경직·떨림 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철 문 앞이나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발이 떨어지지 않아 서 있는 경우가 많고 짧게는 2시간, 길게는 10여 시간 경직되기도 한다”며 “주변의 오해와 시선 속에 환자들이 외출을 꺼리고 사회생활에서 고립되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국내에서 처방되는 약은 대부분 경증 환자용 경구제라 중증 환자들은 약효 소진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며 “‘스타레보’를 비롯해 약효를 천천히 내는 서방정·빠르게 작용하는 속방정을 교차 복용해야 하지만 분할이 불가능한 약이 많고 복용 조절이 어렵다. 효과가 약해 하루 20회 이상 나눠 먹는 환자도 있다. 이런 과용은 부작용과 2차 질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한 환자에게 맞는 약 조합을 설계하려면 긴 진료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3분 진료가 대부분”이라며 “환자들이 스스로 약 복용법을 조정하다 보니 오남용 문제도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해외에서는 최근 들어 레보도파·도파민계 신 치료제가 잇따라 승인됐다. 미국에서는 2024년 애브비의 ‘바이알레브(Vyalev)’가 레보도파·카비도파 복합 성분을 24시간 피하 연속 주입하는 펌프형 제제로 허가됐고 2025년 수퍼너스의 ‘오납고(Onapgo)’가 도파민 작용제인 아포모르핀을 자동으로 피하 주입하는 웨어러블 장치 기반 치료제로 승인됐다. 두 치료제 모두 약효가 끊기는 오프 시간을 줄여 ‘온(ON) 시간’을 늘리고 환자의 일상 기능을 회복시키는 혁신 치료로 평가받는다.
한 이사는 “바이알레브는 액상 형태의 레보도파 제제로 의료진 도움 없이 피하 지방층에 24시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라며 “경구용 알약은 체내 흡수율이 5%에 불과하지만 바이알레브는 일정한 속도로 약물이 혈액에 유지돼 약효 변동이 적고 ‘오프 시간’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 결과 하루 평균 오프 시간을 2시간가량 줄여준다”며 “하루 두 시간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호주와 일본 등은 이런 효과를 근거로 이미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협회는 8월 애브비에 바이알레브 국내 출시를 공식 요청했지만 “도입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지난 23일 국민청원을 통해 신속한 도입과 보험 적용을 촉구하며 “이미 35개국에서 사용 중인 신약이 한국에는 계획조차 없는 것은 환자의 존엄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바이알레브 만이 해법은 아니다. 해외는 다양한 레보도파 계열 치료제가 공급돼 환자 상황과 경제력에 맞춰 선택할 수 있지만 한국은 선택지가 없다. 한 이사는 “바이알레브가 모든 환자에게 필요한 약은 아니다.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선별 도입 후 효과를 검증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이라며 “정부는 환자를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닌 병을 함께 극복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공청회나 협의체를 통해 실질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신경과)은 여성경제신문에 “국내 파킨슨병 환자들은 치료제 선택권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며 “바이알레브 외에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오나프고·누리안즈·뉴플라지드 등 다양한 신약이 해외에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파킨슨병 약물의 가장 큰 한계는 경구 복용으로 인한 ‘오프(OFF) 시간’ 발생”이라며 “먹는 약은 체내에서 약효가 끊기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면 일정한 속도로 약을 주입하는 피하주입형 펌프나 웨어러블 기기 같은 새로운 투여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이알레브는 기존 약물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이 같은 신약이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것은 환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문제 제기할 만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