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운전자금, 현금 상여금 확산
1990년대 카드 판촉과 대형 유통 매출 급증
2010년대 모바일 송금으로 디지털 금융 확대
2020년대 비대면 소비, 온라인 플랫폼 부상

“삼촌, 용돈 계좌로 보내주세요.”
추석은 가족 간 자산이 오가고 소비와 금융거래가 집중되는 시기다. 과거에는 현금 봉투가 대표적인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계좌이체와 모바일 송금이 이를 대신한다. 명절은 여전히 돈의 흐름이 집중되는 시점이지만 그 방식과 풍경은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여성경제신문은 최근 50년간 추석 금융·소비 풍경의 변화를 짚어봤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추석이 금융권의 단기 자금 지원과 직접 연결됐다. 기업들은 명절 상여금 지급과 생산 일정 조정으로 현금 수요가 늘었고 은행들은 이를 충족하기 위해 ‘명절 특별운전자금’을 지원했다. 한국은행은 은행권 지급준비금 운용을 조정하며 단기 유동성 공급을 확대했다. 추석은 가계와 기업의 자금 흐름이 집중되는 일정으로 작용했다. 이 시기 '명절 특별 운전자금'은 기업을 거쳐 곧바로 현금 상여금의 형태로 가계에 흘러 들어갔다. 흰 봉투에 담긴 현금은 명절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였으며 이는 내의 세트, 화장품 세트, 커피 세트 등 당시 유행하던 소비재 선물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카드사와 유통업계가 추석 경제의 비중을 키웠다. 무이자 할부, 캐시백, 경품 행사 등이 본격화되면서 추석은 소비가 집중되는 구간으로 굳어졌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성장하면서 1990년대에는 고급 정육, 굴비 등 프리미엄 선물세트와 함께 백화점 상품권이 등장하여 명절 선물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는 외환위기(IMF) 이후 정부와 금융권이 소비를 경기 부양 효과와 연결해 해석하는 주요 배경이 되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 카드 승인액은 명절 효과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잡았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모바일 결제·송금이 본격 도입되며 명절 소비의 디지털화가 시작됐다. 카카오페이(2014), 네이버페이(2015), 삼성페이(2015)가 잇달아 출시됐다. 토스가 공인인증 절차를 없애고 단순화된 송금 방식을 도입하자 간편 송금이 단기간에 대중에게 자리 잡았다. 로켓배송(2014) 등 이커머스 물류 혁신이 확산되면서 선물 구매·발송이 온라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016년 시행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선물 상한을 도입해 명절 선물의 가격대·구성이 중가 위주로 재편되는 변화를 촉발했다. 또한 한국은행의 2017년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 등 현금 사용 축소 정책이 병행되며 현금 봉투 중심 관행은 점진적으로 모바일 결제·상품권으로 분산되는 흐름이 가속화했다.
2020년대 들어 추석 소비의 양상은 또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길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대면 소비 습관이 굳어지면서 온라인과 모바일 중심의 흐름이 본격화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0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추석 황금연휴와 임시공휴일 효과가 겹치며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고 같은 기간 카드 승인액도 평시 대비 15% 이상 증가했다.
반면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매출이 정체되며 전통 채널의 영향력이 약화됐다. 은행들이 매년 수조 원대의 명절 특별자금을 편성했지만 고금리와 물가 부담으로 소비 여력이 줄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고가의 프리미엄보다는 가성비 높은 생필품·간편식 선물로 옮겨가며 소비의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이 같은 흐름은 디지털 플랫폼이 빠르게 흡수했다. 카카오, 네이버페이, 토스 등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은 송금 무료, 선물하기 쿠폰, 포인트 적립 행사로 이용자를 모으며 명절 금융·소비의 중심 무대로 부상했다. 전통적 오프라인 거래에서 비대면 플랫폼 경쟁의 장으로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추석은 전통 사회의 장시 거래에서 산업화 시기의 운전자금 대출, 카드사와 유통업계의 명절 마케팅, 디지털 금융과 온라인 소비까지 시대별 금융 변화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명절 특수 효과가 약해졌다는 진단이 나오지만 여전히 추석은 금융과 소비 활동이 집중되는 일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추석 소비가 디지털 전환과 실속형 소비로 재편된 가운데 이번 명절 소비 흐름에 대한 전망도 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특수의 약화와 소비 여력 감소를 지적하면서 건강한 소비 확대를 위해서는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체험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코로나 시기 길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라인 중심의 소비 습관이 굳어졌다”며 “명절이라고 해서 오프라인에서 돈이 활발히 도는 모습은 줄고 모바일 송금이나 배송 위주의 소비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추석 연휴가 길지만 소비할 거리나 공간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단순한 현금 지원만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다”며 “지자체 차원의 행사나 체험 기회가 함께 마련돼야 건강한 소비가 확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