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계좌 정지 늘며 금융권 긴장
AI 활용한 탐지 고도화와 전담조직 확대

보이스피싱 등 사기 이용으로 지급 정지된 은행 계좌가 해마다 늘어나며 피해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범죄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져 해외계좌 활용이나 악성 애플리케이션 설치 등 새로운 유형이 잇따르면서 대응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계좌 정지 건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단순 사후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시중은행은 인공지능(AI) 기반 탐지 시스템 고도화, 전담 부서 신설, 자회사 간 정보 실시간 공유 등 사전 예방 중심의 전략을 앞세워 보이스피싱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6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IBK기업)에서 보이스피싱 등 사기 이용으로 지급 정지된 계좌가 15만82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에 접수된 피해 구제 신청 내역을 토대로 집계한 결과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3만4436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NH농협은행 2만7381개, 우리은행 2만4816개, 신한은행 2만2510개, 하나은행 2만1378개, 기업은행 1만9561개 순이었다. 합산 수치는 2020년 2만3381개에서 2024년 3만2409개로 늘었으며 올해 1분기에만 1만488개가 정지돼 연간 처음으로 4만 개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사기 이용 계좌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4대은행은 단순 사후 조치에 그치지 않고 AI 기반의 선제적 탐지와 전담 조직 강화 등 예방 중심 전략을 서둘러 도입하고 있다. 각 은행들은 인력 확충, 인공지능 모니터링 고도화, 자회사 간 정보 공유, 전담 부서 신설 등 서로 다른 해법으로 대응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국민은행은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체계를 전면 강화했다고 밝혔다. 주요 강화 내용은 인적 모니터링 인력 확대,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 등이다. 앞서 지난 8월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인력을 기존 11명에서 25명으로 증원했다. 새로 충원된 인력은 범죄 유형별 분석과 집중 탐지 업무를 맡아 피해 급증 유형을 조기에 식별하고 대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AI가 피해 사례를 스스로 학습해 의심 거래 패턴을 사전에 찾아내고 계좌 지급정지 등 예방 조치를 신속히 취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피해 차단 효과를 높였으며 오는 10월 정부 차원의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이 구축되고 데이터가 축적되면 고객별 맞춤형 탐지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은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전기통신금융사기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대외 협력과 그룹 차원의 제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은행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과 협약을 맺고 사기의심계좌 정보 공유와 핫라인 구축, 보이스피싱 범죄 원화 피해금 환급, 피해 예방 실무자 교육 등에서 공조하기로 했다.
또한 신한금융지주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 신한은행·신한카드·신한투자증권·신한라이프생명보험 등 4개 자회사가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 발생 시 고객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동안은 법적 근거가 없어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에 포착된 정보를 자회사 간 즉시 전파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자회사별로 거래 정지나 문진 강화, 그룹 차원의 임시 조치까지 신속히 가능해졌다. 공유 대상은 보이스피싱 예방에 필요한 필수 정보로 한정되며 공유 사실은 분기마다 고객에게 통보된다.
농협은행은 AI 보안관제시스템을 통해 사이버 공격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다.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보안관제실에서는 각종 보안 장비와 솔루션을 사전 점검하고 모니터링을 수행한다.
또한 자체 AI 탐지 체계와 보안자동화(SOAR)를 구축·고도화해 위협을 탐지하는 즉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아울러 매년 침해사고 대응 훈련 계획을 세워 서버 해킹이나 대규모 디도스(DDoS) 공격 등 비상상황에 대비하고 있으며 내부·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블라인드 모의해킹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보이스피싱 등 사기성 해외송금으로 인한 고객 피해를 막기 위해 ‘보이스피싱 의심 해외계좌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경찰청의 보이스피싱 방지 노하우와 금융보안원의 이상금융거래 공유시스템(FISS)을 활용해 의심 계좌 정보를 은행 내부 전산망에 실시간 반영한다. 영업점에서 고객이 의심 해외계좌로 송금을 요청하면 전산에서 ‘주의 메시지’가 직원에게 전달되고 직원은 이를 근거로 고객에게 위험성을 안내하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은 이달 안에 보이스피싱 등 민생 금융범죄 예방을 전담하는 ‘금융사기예방 부서’를 신설한다. 새 조직은 금융사기 기획·정책, 사전 예방과 대응,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 등 3개 팀, 총 21명으로 꾸려진다. 은행은 이를 통해 보이스피싱 예방과 대응은 물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이상거래 탐지 고도화를 신속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나은행은 2018년 금융권 최초로 전기통신금융사기(대포통장, 보이스피싱) 사고 패턴을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이상거래를 분석·탐지하는 AI 기반 새로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 신FDS는 기존 범죄 시나리오 중심의 탐지 방식에 인공지능 딥러닝 지도학습 기법인 CNN(나선형신경망) 알고리즘을 결합해 구축된 지능형 분석·탐지 시스템이다.
특히 하나은행은 모바일 앱 ‘하나원큐’에 보이스피싱 앱 탐지 기능을 탑재했다. 손님이 하나원큐에 로그인하면 휴대전화에 보이스피싱 앱(원격조정 앱 포함)이 설치돼 있는지 여부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발견 즉시 신FDS에서 거래를 자동 정지해 송금이나 창구 현금 인출을 차단한다. 이어 고객에게 피해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도 병행한다.
또한 하나원큐는 평소 접속하지 않던 지역에서의 로그인이나, 정상 앱 설치 후 보이스피싱 앱이 추가로 설치되는 ‘분리설치형 앱’과 같은 새로운 유형까지 실시간으로 판별·대응해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신 FDS는 기존의 전자금융 불법 이체 사고 예방 외에도 보이스피싱 및 대포통장 금융사기 피해 예방에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최신 사고 패턴에 대한 신속한 탐지로 신종사기 수법에 유기적 대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해 이전의 사후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 차단과 예방에 초점을 둔 맞춤형 종합대책을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보이스피싱 예방 강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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