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000에 韓 기업 62개로 축소
中 신흥 강자 대거 배출해 입지 강화
'지원'은 줄고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
"미·중처럼 정책 패러다임 전환 시급"

글로벌 2000대 기업의 성장세를 분석한 결과 중국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한국보다 6.3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 기업이 대거 진입한 반면 한국 기업은 명단에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기업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미국 포브스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한 '글로벌 2000대 기업의 변화로 본 한미중 기업 삼국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2000'에 속한 한국 기업은 10년전 66개에서 현재 62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은 575개에서 612개로, 중국 기업은 180개에서 275개로 늘었다.

기업 성장세 격차는 더 뚜렷하다. 글로벌 2000대 기업 중 한국의 기업 합산 매출액은 10년간 15%(1조5000억 달러→1조7000억 달러) 성장에 그쳤지만 중국 기업은 4조 달러에서 7조8000억 달러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성장 속도가 한국의 6.3배에 달하는 셈이다. 대한상의는 "중국의 기업 생태계가 '신흥 강자'를 배출하며 힘을 키웠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알리바바(이커머스, 1188%) △BYD(전기차, 1098%) △텐센트홀딩스(온라인미디어·게임, 671%) △BOE테크놀로지(디스플레이, 393%) 등 첨단기술·IT 기업이 성장을 주도했다. 또한 △파워차이나(에너지, 849억 달러) △샤오미(전자제품, 509억 달러) △디디글로벌(차량공유, 286억 달러) △디지털차이나그룹(IT서비스, 181억 달러)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글로벌 2000에 신규 진입했다.
반면 한국은 새롭게 이름을 올린 기업이 주로 금융권이었다. 삼성증권, 카카오뱅크, 키움증권, iM금융그룹, 미래에셋금융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성장 기업도 △SK하이닉스(215%) △KB금융그룹(162%) △하나금융그룹(106%) △LG화학(67%) 등 제조업과 금융업에 집중됐다.
한국 기업의 느린 성장세는 규제 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이 커질수록 '지원'을 줄고 '규제'가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라는 것이다. 김영주 부산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적용 규제가 94개 늘고 대기업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343개까지 증가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달 초 기업 성장 포럼 출범식에서 "우선 메가 샌드박스를 활용해 일정 지역·업종에서라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라며 "AI 등 첨단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는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최소한의 규제 원칙을 적용해 수많은 유니콘 기업을 배출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중소기업에서 중견으로 올라가는 비중이 연간 0.04%, 중견에서 대기업으로 가는 비중이 1~2%에 불과하다"라며 "미국이나 중국처럼 다양한 업종에서 빠르게 신흥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