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 단위 투자와 달리 2억 투자
美 IRA 우회용으로 해석될 소지 커
CATL '전략형 투자'와 극명한 대조
"공급·자본 빈약한 후발주자의 한계"

중국 배터리 업체 하이튬(Hithium)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제조 공장 가동을 시작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명분용 투자'라는 의구심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투자 규모가 선두권 기업 대비 지나치게 작아 실질적 생산 경쟁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여성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하이튬의 미국 내 첫 ESS 제조 공장은 지난 5월 텍사스주 메스키트시에 문을 열었다. 개소식에는 다니엘 알레만 주니어 메스키트 시장과 우쭈위(吴祖钰) 하이튬 회장을 비롯해 200여 명의 업계 리더, 지방 관료, 협력 파트너가 참석했다.
회사측에 따르면 해당 시설은 약 48만 평방피트 규모로 총 2억 달러(약 2700억원)가 투입됐으며 지난 7월부터 전면 양산을 시작해 연간 10GWh 규모의 배터리 모듈 및 시스템 생산 능력을 갖췄다.
문제는 투자 규모다. 하이튬의 2억 달러 투자는 미국 진출을 추진하는 글로벌 배터리 선두권 기업들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CATL·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은 미국 내 배터리 생산기지 확보에 10억~20억 달러를 투입하며 일부 프로젝트는 30억 달러를 넘어선다.
업계 전문가는 "2억 달러로는 기초 설비 수준의 라인조차 갖추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파트너사, 생산라인 구성 등 핵심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실효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투자가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둔 '포지셔닝' 성격이 짙다고 본다.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우회 효과를 노린 상징적 행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모 자체가 IRA 우회용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라며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상징적 행보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번 투자가 IRA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지 생산' 요건은 맞췄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와 현지 조달 비율이 요구돼 2억 달러짜리 투자 규모로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중국 기업 특성상 미국 내 직접 공장 설립 대신 유럽·아시아 생산기지와 제3국 파트너십을 활용한 우회 수출 전략을 유지하며 규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복수의 시나리오를 마련해 왔다.
중국 배터리 산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하이튬은 후발 주자로서 경쟁력을 입증하기 위해 상장 이벤트 중심의 전략을 택했지만 CATL 등 상위권 업체들은 이미 공급망·기술력·자본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책의 불확실성 등 규제 환경을 돌파할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겉보기에는 같은 미국 진출이지만 실제 내실은 전혀 다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ESS 시장에서 하이튬의 입지도 제한적이다. CATL이 테슬라,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등과 전략적 공급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안정적인 수주 기반을 구축한 것과 달리 하이튬은 주요 고객층 확보나 장기 계약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이튬의 이번 투자 발표는 후발 주자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선도기업의 실질적 전략과 후발 주자의 형식적 수사가 더욱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다"라며 "장기적으로 품질·공급망·현지화 등에서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