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포르민 대비 치매 발생률 절반
비만 천식 환자에도 질환 조절 효과
글로벌 임상···"차세대 치료제 기대"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새종로약국에서 약사가 위고비를 꺼내고 있다. 위고비는 혈당 조절에 중요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식욕 억제를 돕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식약처는 위고비가 의사의 처방 후 약사의 조제·복약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의약품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새종로약국에서 약사가 위고비를 꺼내고 있다. 위고비는 혈당 조절에 중요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식욕 억제를 돕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식약처는 위고비가 의사의 처방 후 약사의 조제·복약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의약품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혈당 조절과 체중 감량에 사용되던 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가 치매와 천식 등 만성질환 치료제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후향적 연구들은 GLP-1 약물이 뇌와 폐에 유의미한 효과를 미친다고 보고하며 제약업계의 적응증 확대 움직임에도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s)가 기존의 당뇨병 치료 외에도 신경 퇴행성 및 호흡기 질환 개선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대만 아시아대학교 Szu-Yuan Wu 교수팀은 미국 TriNetX 글로벌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분석에서 GLP-1 계열 약물을 복용한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치매 발생률이 메트포르민 복용군 대비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BMJ Open Diabetes Research & Care’에 발표된 해당 연구는 평균 연령 58세의 환자 8만7000여 명을 GLP-1군과 메트포르민군으로 나눠 추적했다. 그 결과 GLP-1군의 치매 누적 발생률은 약 2.5%였던 반면 메트포르민군은 5%로 나타났으며 알츠하이머병 위험은 12%, 비혈관성 치매 위험은 25%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Wu 교수는 “GLP-1 약물은 단순히 혈당을 낮추는 것을 넘어 신경염증 억제, 뇌 대사 개선, 시냅스 기능 향상, 아밀로이드-베타 축적 감소 등 복합적인 기전을 통해 신경 보호 효과를 나타낸다”며 “기존 1차 치료제로 자리 잡은 메트포르민에 비해 치매 예방 측면에서 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해당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GLP-1 계열은 치매 예방과 치료 가능성을 두고 글로벌 제약사들이 대규모 임상을 진행 중이며 주요 국제 학회에서도 근거를 갖고 상당한 기대를 보이는 약물”이라며 “기존 안티아밀로이드·안티타우 치료제에 이은 차세대 후보군으로 실제 효과를 보여주는 데이터들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GLP-1 계열 약물이 천식 조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영국 애버딘대학교 연구팀은 BMI 30 이상 비만 성인 천식 환자 약 6만명을 분석한 결과 GLP-1 약물 복용군에서 RDAC(위험영역 천식 조절) 및 OAC(전체 천식 조절) 지표 모두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폐 기능 개선 여부는 코로나19 시기 검사 지표 누락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당 효과가 GLP-1 약물의 직접적인 작용인지 혹은 체중 감량에 따른 간접 효과인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미국 Long Beach Medical Center의 폐질환 전문의 Jimmy Johannes 박사는 “GLP-1 수용체가 폐에도 존재하며 약물이 기도 염증 및 과민성을 직접 억제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반면 Northwell Staten Island 병원의 Thomas Kilkenny 박사는 “기존 다수의 연구에서 체중 감량만으로도 천식 조절이 개선된다는 점이 반복 확인된 바 있다”며 “이번 연구에서도 GLP-1 자체 기전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감량에 따른 효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두 연구 모두 후향적 관찰 연구로 인과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통한 기전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해크센서크 메리디언 병원(Hackensack Meridian Jersey Shore University Medical Center in New Jersey)의 내분비내과 Jennifer Cheng 박사는 “관찰 연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GLP-1이 치매나 천식을 직접적으로 예방한다고 결론짓기엔 무리”라며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통해 약물의 기전 및 효능을 보다 명확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GLP-1의 신경학적·폐학적 적응증 확대를 위한 글로벌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제약사나 다국적사의 관련 파이프라인도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글로벌 GLP-1 시장은 2024년 기준 220억 달러(약 30조원)에 달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한 GLP-1 기반 적응증 임상 3상에 돌입했고 천식과 COPD에 대한 신규 적응증 탐색도 본격화하고 있다.

GLP-1 계열 약물은 단순한 혈당 강하제를 넘어 다중 타깃 작용기전을 가진 차세대 전신 치료 후보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가 심화하는 한국 보건의료 환경에서 이 약물이 갖는 중장기 전략적 가치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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