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쇼핑몰·지하철 등 '가챠샵' 속속 진출
플라스틱 미니어처 하나에 2만원까지 소비
아동 인구 줄자 완구업계 키덜트 공략 박차
"단순 소비를 넘어 경험 중심 놀이로 진화"

2030세대를 중심으로 '가챠'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일정 금액을 넣고 핸들을 돌리면 무작위로 상품이 나오는 캡슐 토이 판매기 수십 대가 배치된 이른바 '가챠샵'이 성수, 홍대 등 서울 주요 번화가에 잇따라 들어서며 젊은 세대의 키덜트(Kid+Adult)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1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1990~2000년대 동네 문구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캡슐 뽑기가 다시 한국에 상륙하며 빠르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가챠'는 캡슐 기계에 동전을 넣고 핸들을 돌릴 때 나는 소리를 일본어로 표현한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에서 유래한 단어로 쉽게 말해 캡슐 뽑기 행위를 의미한다.
이전부터 '성지'로 불리던 홍대 외에도 용산 아이파크몰, 여의도 더현대서울 등 임대료가 높은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까지 가챠샵이 진출하며 대중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대는 '어른들의 비싼 취미'라는 말처럼 기본 3000~5900원, 고가는 2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주로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니어처가 중심이며 로봇, 동물, 인형 등 종류도 풍부하다. 랜덤 방식이 특징으로 가격을 지불해도 원하는 제품이 나올 확률이 낮고 운이 없으면 같은 제품이 중복될 수도 있다.
키덜트 문화를 자극하는 유년 시절 캐릭터 제품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여성층에서는 산리오 시리즈가 남성층에서는 드래곤볼, 디지몬 등 향수를 자극하는 IP 기반 제품이 특히 반응이 좋다.

SNS와 유튜브의 확산도 열풍에 불을 붙였다. '가챠샵 투어 브이로그', '가챠깡 언박싱' 등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며 가챠 전문 유튜버까지 등장하고 있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 '경험'을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셈이다.
20대 직장인 이인영 씨는 본지에 "국제전자센터, AK플라자 등 유명 가챠샵은 거의 다 가봤다"며 "한 번 방문하면 10만원 소비는 기본이고 집에는 뽑은 제품들을 전시할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돌릴 때마다 도파민이 분출되는 느낌"이라며 "캡슐을 열기 전의 기대감, 중복된 제품이 나올 때의 아쉬움, 원하는 아이템을 뽑았을 때의 환호가 반복되며 몰입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수요는 완구 업계의 새로운 돌파구로도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아동 인구는 687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2.9%, 10년 전 대비 25.2% 감소했다. 전통적 소비층이 줄어들자 완구업계는 2030세대를 겨냥한 키덜트 시장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아동 인구가 줄어든 상황에서 어른을 위한 장난감이 산업의 새로운 해법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도 이 같은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팝업스토어 행사에 가챠 요소를 결합한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포켓몬 팝업스토어'에서는 배지, 피규어 등 브랜드 소품을 캡슐 머신 형태로 구성해 판매했고 국내 주요 뷰티 브랜드 15곳이 참여한 대규모 팝업스토어에서도 가챠 이벤트가 운영됐다.
일본 업체들도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반다이남코그룹의 한국 법인 반다이남코코리아는 지난해 2월 잠실에 '가챠폰 반다이 오피셜 샵 1호점'을 열었으며 타카라토미아츠 코리아는 내년 1분기 가챠 발주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0%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기관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는 전 세계 캡슐토이 시장 규모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해 6억3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장은 공식 통계는 없으나 업계에서는 올해 400억원 안팎의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챠 소비는 단순한 구매를 넘어 캡슐을 돌리고 여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기대 자체가 하나의 놀이로 소비되는 구조"라며 "일반적인 구매는 지불한 금액만큼의 가치 판단이 따르지만 가챠는 재미 중심의 소비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 제품이 나와도 손해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적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랜덤 뽑기의 특성은 구매 행위에 스릴과 재미를 더하지만 반복적인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중독성이 뒤따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