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성장여력 저하, 역성장 확률 급등
인구감소·제도 정체가 구조적 부담으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지면서 산업 구조와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0년대 들어 역성장 발생 빈도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요인을 넘어 산업 경쟁력 약화와 제도 개혁 지연 등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11일 한국은행 블로그에 게재된 '우리 경제의 빠른 기초체력 저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 30년간(1994∼2024년) 6%포인트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증가율을 의미하는데 한국은 경제 성숙과 더불어 하락세가 불가피함에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일부 선진국의 경우 1인당 GDP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도 잠재성장률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지만 한국은 생산가능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인해 하락세가 가팔라졌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호주는 이민과 노동시장 유연성 등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일정 수준을 유지한 반면 한국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해당 인구의 경제 기여도가 크게 줄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경제발전에 따라 나타나는 측면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그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해 기초체력을 다시 다져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최근 역성장 빈도 증가, 경기 대응과 함께 구조개혁이 긴요' 보고서에서는 역성장 상황의 빈도와 그 구조적 원인도 함께 다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2017년 4분기 단 한 차례만 역성장이 있었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코로나19, 글로벌 금융 불안, 공급망 교란 등 대내외 충격 속에 다섯 차례나 역성장이 발생했다. 정규분포를 기준으로 산출한 한국 경제의 역성장 확률은 2014년 평균 4.6%였던 데 비해 2024년에는 13.8%로 약 3배나 높아졌다.
이에 단기적 경기 대응과 함께 중장기 시계의 구조개혁이 긴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보고서는 “최근 우리나라의 역성장 발생이 증가한 것은 평균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과정에서 경기 변동성이 확대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성장률 평균이 일본 등 저성장 선진국 수준까지는 하락하지 않아 동 국가들에 비해 역성장 확률이 낮은 수준이나, 향후 평균 성장률 하락이 지속될 경우 역성장 빈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 대응과 함께 중장기 시계에서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고 경기 변동성을 축소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신성장동력 확충, 저출생·고령화 대응 노력 등을 강화하는 한편, 내수 활성화와 수출 다변화 등을 통해 대외충격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반복적인 역성장 국면에 진입한 배경에는 산업·제도 전반의 구조적 대응 부족이 자리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성장 기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역성장이 반복되는 가장 큰 원인은 산업 경쟁력의 약화”라며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중국의 추격으로 수출 경쟁력도 낮아진 점이 저성장을 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 구조가 바뀌고 경제 환경이 디지털화되는 등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노동·교육·연금 등 각종 제도는 여전히 과거 틀에 머물러 있다”며 “사람은 컸는데 옷은 어린애 옷을 입고 있는 격으로 현재의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 투자 여건이 악화되고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탈한국’ 흐름이 가속화되며 성장률 둔화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