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의 단독주택 인문학]
일본과 우리나라의 너무 다른 욕실 문화
아파트 욕실이 우리나라 주택 욕실 표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집 욕실로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일 중 하나가 욕실에 변기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욕실 안에 변기를 두는 게 놀랄 일이라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일이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은 거의 변기는 욕실과 별도로 쓰고 있다. 그건 욕실을 쓰는 주거 문화의 차이일 뿐이니 그 반응에 응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집집마다 안방에 디럭스한 욕실을 따로 두는 건 우리나라 집에만 있지 않나 싶다. 한 집에 식구가 많지도 않은데 굳이 욕실을 안방에 따로 있는 게 의아하지 않은가?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면 한 사람은 욕실까지 부설된 안방, 다른 한쪽은 싱글베드에 현관 입구 욕실을 쓰게 된다. 한 집에 있는 두 곳의 욕실, 방을 따로 쓰는 부부 중 한 사람은 차별받고 사는 셈이지 않은가?

일본과 우리나라는 욕실 문화가 다르다

일본 집의 욕실에는 욕조만 있고 화장실은 따로 두어 쓰고 있을까? 일본 사람들은 매일 욕조에 몸을 담그는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온다습한 기후 조건도 이런 목욕 문화에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욕실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급하게 볼일을 보려면 변기를 따로 쓸 수밖에 없지 싶다.

우리나라는 욕실에 욕조를 빼고 샤워기만 쓰는 집이 많다. 그렇지만 일본 사람들은 욕조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유이(唯二)한 좌식 생활권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있고 일본에는 없는 게 바닥 난방이다. 밖에서 집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두 나라의 집 안 실내 온도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 집 안에서 얇은 옷만 입고 지낼 수 있는 건 바닥 난방 덕분이다.

일본 주택의 욕실, 삼나무로 만든 욕조를 많이 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목욕을 하는데 욕조에 담은 물을 갈지 않고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쓴다고 한다. /김정관
일본 주택의 욕실, 삼나무로 만든 욕조를 많이 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목욕을 하는데 욕조에 담은 물을 갈지 않고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쓴다고 한다. /김정관

일본 집은 집안에 따로 난방 장치가 없으니 잠자리에 들기 전에 뜨거운 물로 몸을 데워 이불 안에 쏙 들어가 잠을 청한다. 여름에는 하루에도 몇 번 땀에 전 몸을 씻어야 하고 겨울에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게 일본의 목욕 문화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에게 욕실은 욕조가 중심이고 변기는 독립된 공간에 두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집안에 욕실이 들어오게 되었던 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는 온몸을 다 씻는 목욕은 대중탕을 이용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지금도 욕조 없이 샤워 위주로 몸을 씻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건 대중탕 이용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에게 욕실은 욕조 중심, 우리나라는 욕실에서 변기를 가장 자주 쓰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욕실을 두고 화장실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게 이를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욕실 타입이 우리나라 주택 욕실의 표준인가?

안방에 욕실을 따로 두는 건 우리나라 주택의 기본처럼 되었다. 아파트의 기준 면적이랄 수 있는 전용면적 85㎡에는 당연하고 그보다 적은 면적에도 안방에 욕실을 두는 건 필수 항목이다. 왜 면적이 넓지 않은 집에 굳이 욕실을 두 개나 두는 걸까? 그건 아파트는 안방을 중심으로 하는 부부 위주의 집으로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방에는 욕실만 있는 게 아니라 드레스룸과 파우더룸까지 두는 게 요즘 아파트의 추세이다. 안방은 다른 방에 비하면 크기도 다르지만 부설된 공간까지 있어 업그레이드된 영역이 된다. 그런데 요즘 주거 생활의 흐름은 부부가 방을 따로 쓰는 각방 문화인데 안방은 누가 써야 할까? 아마도 가정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쓰게 될 테니 평등한 부부 관계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필자 설계 도심 단독주택, 1층은 현관과 주차장이고 2층에 침실을 두고 3층은 거실과 주방이 있다. /김정관
필자 설계 도심 단독주택, 1층은 현관과 주차장이고 2층에 침실을 두고 3층은 거실과 주방이 있다. /김정관
2층에 있는 침실, 아파트처럼 안방에는 별도의 욕실과 파우더 공간과 드레스룸을 설치했다. /김정관
2층에 있는 침실, 아파트처럼 안방에는 별도의 욕실과 파우더 공간과 드레스룸을 설치했다. /김정관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될 만큼 생활 기능이 갖춰진 안방은 부부 생활의 위기를 부를지도 모른다. 거실은 TV 시청실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지라 부부의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걸 잘못된 생활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일상생활에 대화가 단절되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각방을 쓰더라도 잠만 따로 자야 하는데 사소한 말다툼으로 안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     

안방에 욕실이 하나 더 있어야 하는 이유를 굳이 들자면 식구들의 사용 편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는데 급하게 변기를 써야 한다면 응급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또 식구 중에 변기를 오래 쓰는 사람이 있으면 아침에는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욕실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면 설득력이 있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집 욕실

욕실은 화장실과 함께 건축물이 진화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화장실은 이제 볼일만 보고 나오는 공간이 아니다. 화장실에서 급하게 볼일을 처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휴식하는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공중화장실이 얼마나 아늑하고 아름다운지 일을 마치고도 한참을 머물게 되지 않는가?    

단독주택으로 우리집을 지으면서 아파트 욕실을 그대로 쓴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처사가 아닐까 싶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산다는 건 우리 식구가 바라는 집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파트 평면의 복사판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아파트 평면에서 가장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욕실이니 우리집만의 욕실을 넣어 보자.

필자 설계 도심 단독주택 수정 계획안 - 3층 거실 층에 작은 마당을 두었다. 이 마당이 있어서 거실과 주방이 외부공간으로 열리니 가족들의 일상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 단독주택에 마당이 없으면 아파트나 다를 게 없지 않을까? /김정관
필자 설계 도심 단독주택 수정 계획안 - 3층 거실 층에 작은 마당을 두었다. 이 마당이 있어서 거실과 주방이 외부공간으로 열리니 가족들의 일상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 단독주택에 마당이 없으면 아파트나 다를 게 없지 않을까? /김정관
이층의 침실, 안방의 욕실을 없애고 식구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우리집만의 욕실 공간을 만들었다. 가족들이 공유하는 드레스룸에서 서로 옷을 골라주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김정관
이층의 침실, 안방의 욕실을 없애고 식구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우리집만의 욕실 공간을 만들었다. 가족들이 공유하는 드레스룸에서 서로 옷을 골라주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김정관

우선 욕실 영역을 넉넉하게 잡으면 어떨까? 건식으로 쓸 수 있는 세면대는 밖으로 내고 파우더 공간으로 쓰는 게 좋겠다. 사실 집을 관리하면서 가장 힘든 곳이 욕실이니 영역을 분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집을 짓는 장소가 도심이 아닌 전원이라면 욕조를 두고 공간의 분위기도 창밖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부부가 방을 따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욕실을 공유하는 평면을 구성하는 것도 필수 사항이 아닌가 싶다. 안방이라는 용어를 지우고 부부의 침실과 서재를 하나의 영역에 두면 훗날 방을 따로 써도 좋을 것이다. 각자의 침실에서 잠은 따로 자더라도 욕실을 공유하면 한 방을 쓰는 것이나 진배없게 된다. 욕실 딸린 안방과 문간방을 쓰는 각방살이는 부부의 위상에서 심각한 차별이 생기지 않는가?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우리집만의 욕실을 가지는 건 일상생활에서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꿀팁이라 할 수 있겠다. 각자의 욕실이 아닌 우리 식구들의 욕실을 어떻게 꾸미는 게 좋을지 생각하는 만큼 만들 수 있다. 안방에만 갖추었던 파우더 공간과 드레스룸을 가족 모두가 함께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기가 목욕하던 시기가 지나 혼자 양치질을 못 하던 유아기도 파우더 공간에서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다. 밖으로 큰 창이 난 욕조에 몸을 담그고 햇살이 드는 욕실에서 취하는 휴식이 우리집이 좋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가족 모두가 쓰는 드레스룸에서 외출하면서 입을 옷을 골라주는 엄마의 손길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집만의 욕실을 꾸미고 싶어 우리집을 짓고 싶지 않은가?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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