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농협銀·케이뱅크, 팍스 프로젝트 참여
CBDC 병행 속 규제 방향은 여전히 유동적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해외송금 테스트가 본격화되며 국내 은행권이 차세대 글로벌 결제 인프라 실험에 나섰다. 일본 대형 은행들과의 민간 협력 프로젝트인 ‘팍스 프로젝트(Pax Project)’를 통해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국가 간 송금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
2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은행들이 참여한 이번 실증은 단순한 파일럿 테스트를 넘어 민간 주도의 디지털 자산 활용이 실물 금융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팍스 프로젝트는 일본의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프로그맷(Progmat)'과 한국의 페어스퀘어랩,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이 공동 주관하는 국제 테스트 사업이다. 디지털자산을 활용해 송금·환전·역외 결제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며 일본 메가뱅크 (MUFG·미즈호·SMBC)가 프로그맷 설립을 주도한 만큼 프로젝트의 상징성과 실효성이 크다고 평가 받는다.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케이뱅크는 이 프로젝트에 국내 금융사로 참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 2021년과 2023년에는 특허 알고리즘 기반의 암호화폐 '헤데라 해시그래프'를 활용한 송금 테스트를 선행한 바 있으며 이번 팍스 프로젝트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실증 실험에 나섰다.
케이뱅크는 팍스 프로젝트에서 '한일 은행 시스템 연동을 통한 해외송금 개념검증(PoC)' 영역에 참여한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한국과 일본 간 무역 송금이 실제 금융 환경에서 원활히 작동하는지를 점검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는 국내 은행들과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페어스퀘어랩이 참여한 가운데 3월부터 약 3개월간 진행 중이다. 농협은행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자산과 기존 금융 시스템 간의 접점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특히 디지털자산 시장의 건전한 성장과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도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실험의 배경에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송금 시스템의 시간과 비용을 혁신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현재 국제 송금은 중개은행과 SWIFT망을 거쳐야 해 수수료 부담이 크고 처리 시간도 길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중개 절차 없이 1~2분 내 송금이 가능하고 수수료도 낮출 수 있어 은행권이 관심을 기울이는 핵심 동인이 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보고서 '일상으로 다가오는 스테이블코인-스테이블코인 규제 및 서비스 시사점'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은 중개기관(금융사)의 개입 없이 거래(지급)가 네트워크상 검증·승인되는 즉시 자금을 거래 상대방에게 이전(결제)할 수 있어 거래 시간·비용을 절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에 대비한 교환 비율을 이행하는 민간 디지털화폐로 가상자산이면서도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게끔 설계 된다"고 설명했다. 송금 수단으로서의 실용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디지털 자산이라는 진단이다.
다만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만큼 은행권은 본격적인 사업화보다는 테스트와 준비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스테이블코인 이용자를 보호하고 산업을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하여 관련 규제 공백의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라며 “금융안정, 통화정책, 자본유출 등 부문에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가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에 "지금은 수익보다 기술 검증이나 제도 정비 흐름에 맞춰보자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각 은행이 입법 속도나 해외 사례를 보면서 방향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들은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실험에 참여함과 동시에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실증 프로젝트에도 발을 담그며 병행 전략을 취하고 있다. 팍스 프로젝트 역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를 대비해 실질적 송금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실증 실험이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별도의 법적 정의나 발행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각 금융사는 규제 공백 속에서 자율적 테스트를 진행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이후 법인의 시장 참여 확대와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 수립을 포함한 2단계 입법이 가상자산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전일 공개한 '2024년 지급결제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지급수단적 특성을 내재한 만큼 광범위하게 발행·유통돼 법정통화를 대체하는 지급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 정책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어 별도 규제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가상자산위원회 등 향후 진행될 스테이블코인 입법 논의에 적극 참여해 중앙은행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향에 의견을 제시하는 등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 바람직한 지급결제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병목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기자 설명회에서 "외부 충격으로 스테이블코인 가치가 법정화폐 가치에 정확히 1대 1로 연동되지 않고 가치가 축소될 경우 상환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 경우 발행 기관은 예금을 대거 인출해서 대응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한은의 디지털화폐 테스트나 스테이블코인 논의와 관련해 "실물화폐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며 "하지만 디지털 지급수단은 전력과 통신이 끊기면 기능을 할 수가 없고, IT(정보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등을 위해서도 실물화폐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지급수단을 사용할 때 언제라도 실물화폐로 바꿀 수 있다는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실물화폐를 발행하지 않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