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여파에 성장률 하향·시장개입 본격화
한국 환율·가계부채 변수 고려해 신중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화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시장 변동성과 성장 둔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선제적인 통화·재정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인도네시아·인도·말레이시아·싱가포르·대만 등 주요 아시아 국가는 기준금리 인하, 외환시장 개입, 수입구조 조정 등 실질적 조치에 나섰고 한국은행은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해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며 신중한 대응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하 여부를 두고는 경기 둔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과 환율 불안을 감안해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인도네시아산 제품에 부과한 상호관세율은 32%다. 관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대미 무역 흑자 조정을 추진 중이며 수입 확대와 비관세 장벽 완화 등을 협상 카드로 제시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밀·대두 등 농산물과 원유·LNG·휘발유 등 에너지, 미국산 기계장비 등 수입을 최대 190억 달러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자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인허가 간소화 및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 중이고 섬유·가구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협상은 60일 이내 타결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인도는 관세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기준금리를 6.0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완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인도 중앙은행(RBI)은 지난 2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며, 향후 추가 인하 가능성도 시사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기존 6.7%에서 6.5%로 하향 조정됐고, RBI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면서 당분간 금리 인하와 동결을 중심으로 정책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성장 둔화 폭에 따라 최대 1%포인트 수준의 추가 인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비상 대응에 나섰다. 로이터통신과 AFP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는 미국 관세 여파 등 글로벌 경기 둔화 전반에 대응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간 킴 용 싱가포르 부총리 겸 통상산업부 장관은 태스크포스(TF)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고율 관세가 세계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확대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역시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만은 미국의 고율 상호관세 부과에 대응해 산업·고용 안정 지원에 나섰다. 자유시보 등 대만 언론은 20일 보도를 통해 대만 행정원이 미국발 관세로 피해를 본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880억 대만 달러(약 3조8800억원) 규모의 대응 계획을 21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말레이시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준수를 강조하며 자의적 관세에 대한 우려를 중국과 함께 표명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국은 다자무역 체제 수호와 공급망 협력 강화를 명시하며 국제 사회의 개방성과 포용성 유지를 위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환율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 불안 확대를 경계하며 과도한 충격 발생 시 신중한 개입 방침을 밝혔다.
한국은행도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국내 소비 둔화와 수출 회복세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대외 불확실성까지 고려해 기존 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통위는 인하 배경과 관련해 "1분기 경기 부진과 통상 여건 악화로 성장의 하방 위험이 확대됐다"면서도 "하지만 미국 관세정책 변화, 정부 경기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고 환율의 높은 변동성과 가계대출 흐름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은의 셈법도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관세 여파에 따른 성장률 둔화와 내수 침체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미 간 금리차에 따른 환율 부담 역시 완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성장률이 더 악화하거나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한은 역시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환율이 내리면 수입 물가가 낮아지니까 일단 인하가 가능하다”며 “또한 경기 침체의 심화, 내수 침체, 성장률 둔화 등 요인이 금리 인하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달에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한은도 인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연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선 후 하반기로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