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장서 원래 수율 정상화 어렵다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E&S까지 동원 '고군분투'

최태원 회장은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 SK그룹 전반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수익 중심 경영 전환을 강조했지만 구조적 리스크가 심화하는 모습이다. 생산 실적과 가동률 하락에 이어 환차손 우려,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프로젝트 중단 등 연이은 악재에 직면했다. 지속되는 부진 속에서 SK이노베이션과 SK E&S와의 합병도 '적자 메우기' 성격의 대응 아니었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3일 SK이노베이션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배터리 부문 매출은 6조2666억원, 영업손실은 1조1270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1.4% 급감했고 영업손실은 1년 전(5818억원)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증권업계는 SK온이 1분기에만 25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나마 지난해 4분기(3549억원)보다는 손실 규모가 줄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14일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3'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인 'Ba1'으로 하향 조정했다. 배터리 부문의 지속적인 부진과 그에 따른 채무 부담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SK온은 사업 초기부터 파우치형 배터리를 중심으로 생산라인을 확충해 왔다. 파우치형은 에너지 밀도가 높아 전기차 주행거리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각형이나 원통형에 비해 가격이 높고 안정성이 낮아 글로벌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SK온은 2025~2026년에도 전년 대비 가동률이 3%씩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초기 고정비 부담으로 수익성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SK온의 적자 원인 중 하나로 미국 공장의 수율이 50~60%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해 SK온의 평균 가동률은 43.8%로 2023년의 87.7%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생산량도 12만1488천셀로 전년 22만851천셀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SK온은 국내 서산을 비롯해 중국 창저우, 유럽 헝가리 코마롬, 미국 조지아 등지에 글로벌 배터리 생산기지를 운영 중이다. 중국 창저우 공장은 2020년 말 가동을 시작했고 헝가리 코마롬 1공장은 2019년부터 상업 생산에 돌입했다. 이어 코마롬 2공장은 2022년 말부터 일부 라인을 가동했으나 완전한 정상화는 지연되고 있다.
전체 공장은 파우치형 배터리 위주로 설계돼 있으나 글로벌 수요 변화에 따라 향후 일부 전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초기 가동 단계에서 낮은 수율과 고정비 부담이 동반되면서 공장별 손익 분기점 도달 시점이 불확실하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 수율이 낮으면 불량률 증가와 납기 지연으로 고객사 신뢰에 타격을 주고 이는 장기적인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히 생산라인 수보다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라인의 비중이 중요하며 가동률이 낮은 상황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배터리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해외에서 공장을 세우고 생산을 시작했을 때 수율이 낮은 것은 일반적이며 정상화까지 보통 3년 정도 걸린다"며 "다만 이 기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가 기술력 차이"라고 말했다. 수율 안정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납품 차질과 적자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엔솔 역시 과거 폴란드 공장 수율 정상화까지 3년 정도 걸렸지만 '레슨앤런'을 통해 다음 공장에서는 약 3개월 줄일 수 있었고 현재 모든 공장 수율 95%를 유지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율이 낮을수록 불량률 증가 → 납기 지연 → 고객 신뢰 하락 → 장기 손실 구조로 이어진다. SK온이 GM이나 포드와의 대규모 계약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와의 기술 역량의 차이를 극복하고 실제 납품이 얼마나 이뤄지는지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파생금융상품 운용에서도 경고등이 켜졌다. 2024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SK온은 환율과 유가 변동에 대비해 다양한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지만 지난해 관련 거래에서 211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인식한 이익은 1960억원에 그쳐 순손실로 귀결됐다.
외화 자산 구조 역시 리스크 요인이다. SK온은 미국 달러, 중국 위안화, 헝가리 포린트 등 주요 외화를 기반으로 글로벌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환율 변동에 취약한 구조다. 미국 달러화에서는 1조원이 넘는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 위안화 기준으로는 8780억원 규모의 순 부채를 떠안고 있다. 특히 위안화 환율이 강세(원화 약세)로 전개될 경우 손실로 직결되는 구조다.
SK온 자체 분석 결과 원화 대비 위안화 환율이 5% 상승할 경우 약 439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SK온의 부채 부담이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체 외화 포지션은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통화별로 보면 리스크가 크게 쏠려 있는 셈이다.
이뿐 아니라 글로벌 유가 변동도 SK온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흡수 합병하면서 석유제품 트레이딩 사업이 새롭게 포함됐고 이에 따라 유가 변동성에 노출된 상황이다. SK온의 석유 사업 부문 매출은 지난해 11∼12월 두달간 7조7682억원을 기록했지만 구조상 단기간 내 의미 있는 손익 기여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유가 스왑 등 일부 파생 계약에서도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도 제동이 걸렸다. SK온과 코스모화학은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클라리오스와 함께 3자 합작법인(클라리오스서큘러솔루션스)을 세워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해 왔지만 올해 들어 논의가 중단됐다. 클라리오스는 지난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승인받은 바 있으며 전체 합작 규모는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폐기를 공언한 이후 관련 사업이 위축된 것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SK온 관계자는 "해당 프로젝트는 대내외 환경을 고려해 협력 시기를 조율 중이며 지연될 수는 있어도 중단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SK온의 구조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가운데 지난해 진행된 SK E&S와의 합병은 사실상 유일한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E&S는 발전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를 해외 가스전에 직접 투자해 직도입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낮춰왔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LNG 생산 확대 기조도 수익성 방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S의 윤활기유 사업도 분기당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내며 SK온의 적자 구조를 일부 상쇄하고 있다. 증권업계가 전망한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1.8% 증가한 4173억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E&S의 흑자가 재무 방어에 기여하는 측면은 있으나 결국 SK온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대응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업계 내부에선 "SK E&S 직원들 다수가 합병으로 인한 인센티브 감소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