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입증 어려운 진료 과정 성범죄
성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 후 복귀 가능
진료 시 여성 의료진 동석 의무화 필요
면허 재교부 심사 강화 여부 지켜봐야

산부인과에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진료 행위와 범죄를 구별하고 입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산부인과에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진료 행위와 범죄를 구별하고 입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산부인과에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진료 행위와 범죄를 구별하고 입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벌 후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성범죄 전력이 있는 의료인이 다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구조적 허점이 지적된다.

2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산부인과는 여성 환자가 안심하고 찾아야 하는 공간이지만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 입증이 어렵고 처벌도 약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성범죄 의료인의 면허 영구 취소와 산부인과 진료 환경 개선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3년 12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793명(한의사·치과의사 포함)으로 집계됐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강간·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가 689명(86.9%)으로 가장 많았다.

실제 사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일 세계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진료 중 환자를 간음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당시 A씨는 퇴원을 앞둔 여성 환자의 진료 중 성추행을 하다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환자의 몸에 삽입한 것은 자신의 신체가 아닌 검사를 위한 장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과 DNA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해 A씨의 주장을 기각하고 피해자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에게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이 명령됐다.

산부인과에서 성범죄가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가 이를 입증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진이 진료 행위였다고 주장하면 법적으로 이를 반박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법원에서도 성범죄를 착오로 판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성범죄 자체가 입증하기 쉽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는 작업이 어렵다”며 “진료 과정에서 성추행이 발생하거나 환자가 성추행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명백히 성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진료 과정에서는 이를 밝히기가 어렵다. 다른 증인이 없다면 피해자 주장만으로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성 의료 인력의 동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 법제화되지는 않았다. 이 변호사는 “산부인과에서는 여성 간호사나 여성 의료 인력을 반드시 대동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닌 권장 사항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료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로 인해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여성 의료 인력의 동석 의무화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가 성범죄를 입증하더라도 가해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법적 규제는 의료법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법률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성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 의료법이 아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병원을 개설하거나 근무하는 것이 제한된다.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금고형 이상을 받으면 (의료법상) 의료 면허가 취소되지만 벌금형을 받은 경우라도 (아청법상) 일정 기간 여성이 근무하는 병원을 운영하거나 계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산부인과나 소아과를 개설하거나 근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청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만 취업 제한에 있어서는 아동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에 대한 범죄까지 포함하고 있다. 성범죄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벌금형과 실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심각한 성범죄의 경우 10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영구 취업 제한을 두는 것은 어렵다. 이 변호사는 “가장 심각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법적으로 취업 제한은 최대 10년까지만 가능하다. 산부인과 진료 역시 결국 최대 10년 제한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지난 2023년 11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성범죄 의료인의 면허 취소 기준이 강화됐다. 개정 전에는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도 의료행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면허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 후에는 변호사법 등 다른 전문직 관련 법률을 근거해 금고형 이상의 형(선고유예 포함)을 선고받으면 강제로 의료 면허를 취소하는 규정이 생겼다.

하지만 면허가 취소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교부가 가능하다. 법 개정 이후 재교부 심사 방식이 강화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변호사는 “과거에는 면허 재교부가 쉽게 이뤄졌지만 법 개정 이후 범죄로 인해 면허가 취소된 경우 재교부가 어렵게 만들어졌다. 다만 2023년 11월에 도입됐기 때문에 개정된 후 면허가 취소된 사례는 많지 않다. 또 최소 3~4년 동안 면허 취소가 유지되기 때문에 (법 개정 후) 재교부가 가능한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의사끼리 더욱 단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의료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며 “앞으로 재교부 심사가 과거처럼 형식적으로 이루어질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강화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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