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난립, 정작 연구·사업화는 뒷전
활용 없는 인프라, 글로벌 경쟁력 멀어져

지난 2013년 문을 연 충북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는 당시 국내 최고의 바이오 인프라를 구축했다. 1000억원을 투입해 최첨단 연구 장비 700여 종을 갖췄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립보건연구원 등 국가 기관이 인접해 규제·임상·연구의 삼박자가 맞는 바이오 연구 허브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이 단지의 입주율은 66% 수준에 불과하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바이오 산업의 성장세를 뒷받침해야 할 바이오 클러스터(생명공학 협력단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조성된 바이오 클러스터는 30개에 이른다. 그런데 입주율이 20%도 채 되지 않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바이오 클러스터 입주율·분양률 자료를 보면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입주율은 지난해 말 기준 66.7%에 그쳤다. 이 단지는 LG화학, HK이노엔, 메디톡스, 바이넥스 등도 입주한 국내 대표 바이오 클러스터다. 1997년 조성이 본격화해 2008년 제1단지, 2021년 제2단지가 완공됐다. 최근 3년간 입주율은 63~66%로 변화가 거의 없다.
산업부에 따르면 경북 안동의 바이오산업단지는 2019년 착공돼 2021년 첫 기업이 입주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입주율은 14%에 불과하다. 강원도 춘천·홍천 지역에는 기존 네 개의 바이오 클러스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개가 추가로 조성될 예정이다.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의 난맥상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는 바이오벤처들이 선호하는 입지이지만 정작 연구개발(R&D) 장비와 인프라가 부족해 곤란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많다. 반면 오송과 대구경북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최고 수준의 연구 장비를 갖췄지만 창업 지원과 투자 유치는 미흡하다. 인천 송도는 글로벌 기업 유치에 성공했지만 대기업 중심의 구조로 인해 바이오 벤처들이 설 자리가 좁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클러스터 간 연계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김성규 의료산업협회 본부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오송과 대구경북의 연구 시설·장비를 전국 바이오기업이 공동 인프라로 이용하도록 하고 창업 지원과 병원 연계 연구는 각각 특화된 클러스터가 맡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현재 몇몇 클러스터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계를 논의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협의체가 구성된다면 보다 체계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 주도의 '퍼주기식' 운영 방식에 있다. 미국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병원, 대학, 연구소가 맞닿아 기업과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반면 한국의 클러스터는 허허벌판 위에 연구시설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기업이 입주하기를 기다리는 구조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국내 클러스터 기업들은 기술의 제품화, 사업화, 마케팅 등의 협력도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주원 KDFPS 경영실장은 여성경제신문에 "국내 주요 바이오 클러스터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만 해도 7개 이상"이라며 "관련 부처가 산업부, 복지부, 과기정통부 등으로 나뉘어 있고 지자체도 개별적으로 운영해 통합 관리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바이오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간 기업 주도로 연구개발부터 임상·사업화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바이오 클러스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바이오 클러스터가 '따로국밥' 식 운영을 지속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클러스터 간 협력뿐 아니라 민간 주도의 운영 방식 도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