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지역 비례선발, 거점도시 육성 제안
제 7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 (GEEF)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7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험(GEEF 2025)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7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험(GEEF 2025)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주요 과제로 저출생·고령화와 기후변화를 지목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학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거점도시 육성, 탄소배출권 거래제 개편 등을 강조했다. 특히 과도한 입시 경쟁이 청년층의 삶을 압박하면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이 총재는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7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에 참석했다. 기조연설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누구나 인정할 만큼 과열된 경쟁 속에 놓여 있다”며 “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의 삶과 노후까지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번아웃을 겪고 청소년기의 행복을 잃어가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초저출산, 수도권 인구 집중, 입시 경쟁 심화 등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이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경우 인구 감소와 저성장 고착화, 사회적 갈등 심화, 청년층의 기회 축소 등 심각한 부작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근 ‘거점도시 육성’과 ‘지역별 비례선발제’라는 다소 파격적인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며 “과도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비수도권 지역에 소수의 거점도시를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지역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제약이 많았다”며 “낙후지역의 기본적인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공평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책지원이 너무 많은 지역으로 분산됐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동안 한정된 자원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면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국토 면적과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은 2~6개의 거점도시를 육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분석됐다. 이를 위해 의료·문화·스포츠 시설 등 핵심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조성해 수도권 수준의 정주 여건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대입제도 개편 역시 필수적이라며 대학의 신입생 선발 자율권을 보장하면서도 최종 선발 과정에서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하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수차례의 대입제도 개편이 이루어졌음에도 입시 경쟁 과열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며 “대학의 선발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그 결과가 지역별 균형을 이루도록 유도한다면 과도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 총재는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도입될 경우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선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교육 환경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짚었다. 또한 서울 중심의 입시 경쟁이 완화되면서 수도권 인구 집중과 주택 가격 상승을 억제해 출산율 회복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다양한 지역 출신 학생들이 대학에서 교류하면서 지역 간 격차 해소와 사회 통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정부의 정책 변화나 법 개정 없이도 대학의 자율적 결정만으로 도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성적순 선발이 가장 공정하다는 인식이 강해 제도 도입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일부 대학이 입학생의 약 15%를 지역균형전형으로 선발하고 있지만 이는 전체 입학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과 함께 대학의 입시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입시제도는 성적을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기준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현재의 입시제도에서는 암기능력이 뛰어나고 수학적 계산능력이 우수하며 20~30분 내에 주어진 글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능력이 탁월한 학생들이 명문대 진학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 또한 이러한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혜택을 크게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만약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주고 창의적인 글을 작성하라고 하면 제 실력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만약 이러한 기준이 입시 평가에 포함된다면 현재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구성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과거 한국이 선진국을 모방하며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현재의 입시제도가 일정 부분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으며 단순한 따라잡기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처럼 순응적인 인재를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협력하고 창의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입시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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