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부 분열…전공의·의협·교수 파열음
윤석열 탄핵 변수…의협, 협상 시점 저울질

지난해 6월 3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3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의대생 복귀 시한이 다가오면서 대학들이 '최후통첩'을 날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 의대 정원을 기존 수준(3058명)으로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전제조건인 의대생들의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이 복귀하지 않는 학생에 대한 ‘제적’ 조치를 공식화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갈등만 커지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학장들은 3월 말까지 복귀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학칙에 따른 엄정한 조치를 예고했다. 24~27일을 기점으로 복학하지 않으면 출석 부족으로 F학점 처리와 유급이 불가피하다. 서울대 의대 김정은 학장은 "집단휴학을 받아줄 수 없다"며 "수업 거부 및 학사 일정 방해 행위에 대해 학칙에 따라 중징계를 할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도 제적 방침을 공식화했다. 최재영 의대 학장은 "24일 이후 추가 복귀 일정은 없다"며 미등록 후 휴학 신청자는 즉시 제적될 것이라고 했다. 고려대 의대 역시 등록 및 복학 신청 마감일을 21일까지 연장했으나 이후에는 ‘미등록 제적’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대학 측의 이 같은 조치가 학생들을 협박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의대협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1만 8000명의 의대생 중 1만 5000명이 제적될 위기에 처했다"며 "강제 휴학 반려 후 재신청을 요구하는 대학도 있다. 이는 명백한 학사권 남용"이라고 했다.

의대생과 대학 간 갈등뿐만이 아니다. 전공의와 교수, 대한의사협회(의협)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며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학생들을 협박하는 학장의 행태가 ‘강약약강(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함)’의 전형"이라며 "잘못된 정책을 추진한 정부에는 침묵하고 학생들에게는 제적을 운운하는 것은 이중적"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부 교수들은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의사이기 전에 시민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룰을 따를 필요가 있다"며 "모집정지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일단 3058명 정원으로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의협 내부도 혼란스럽다. 전공의들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기존 3058명에서 증원분 1500여 명을 제외한 1500여 명만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협 지도부는 이에 대해 부인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교육 여건이 안 된다면 아예 26학번을 뽑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며 강경론에 힘을 실었지만 한 지역 의사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요구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았다.

의대 신입생들마저 정부 정책에 반발하며 동맹 휴학을 선언하고 나섰다.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비상시국대응위원회는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달라"며 "의료계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에 닿지 않았던 의료계의 목소리는 25학번이 동참하지 않으면 더욱 무시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수업 거부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단순한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 내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 이후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의협 간부는 여성경제신문에 "현 정부가 의료계와의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며 "대통령실의 힘이 빠지면 그때부터 정치권과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의료정책이 윤 대통령의 탄핵 인용·기각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는 만큼 의료계가 당장은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정부는 의대생 복귀를 조건으로 내년도 모집인원을 기존 정원으로 동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대생들이 대규모로 제적될 경우 의료 공백이 불가피하다. 반면 의대생들은 '정책 철회 없는 복귀는 없다'며 강경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들은 학칙을 앞세워 징계를 예고했다. 1만 5000명에 달하는 의대생을 실제로 제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조건부 동결’을 제안하며 한발 물러선 만큼 의료계 역시 현실적인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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