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장애인 증가, 정책적 대응은 걸음마 단계
이중고 겪는 고령 장애인 위한 맞춤형 지원 시급

76세 시각장애인 A씨는 최근 복지시설 입소를 알아보다 고개를 떨궜다. 노인 요양시설은 장애인이어서 받아주지 않았고, 장애인 시설은 고령자라서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인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다"는 답변은 A씨를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고령 장애인은 노인과 장애인 복지 제도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하면서 복지 정책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등록 장애인 중 65세 이상 고령자는 54.3%로 절반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 고령화율(18.2%)의 약 3배에 달한다. 장애인의 고령화는 일반 인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고령 장애인은 일반 고령자와 달리 이중 위험에 처해 있다. 장애와 노화가 겹치면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다. 부모 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고,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아 돌봄 공백은 더욱 심각하다.
69세 김정섭 씨는 65세 이후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지만,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65세 이후 처음 장애를 판정받은 그는 법적 기준에 따라 노인 장기 요양 보험만 이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하루 3시간 남짓의 요양 보호사 지원에 의존해야 했고,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65세 지적장애인 송재림 씨의 경우 이전에 한 달 577시간의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았으나 노인 장기 요양 보험으로 전환된 이후 한 달 70시간으로 줄었다. 사실상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졌지만, 노인 요양시설 역시 대기자가 많아 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제도 개요를 보면 65세 이후 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은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선천적 장애인이라 해도 65세가 넘어가면 노인 장기 요양 보험 대상자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활동 지원 서비스와 장기 요양 보험 사이의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는 주로 신체 거동 여부를 기준으로 지원 시간을 정한다. 반면,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는 장애 특성과 필요에 따라 최대 16시간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노인 장기 요양 보험으로 전환되면 지원 시간이 최대 5시간으로 줄어든다.
장애인복지시설 등 장애인 지원 서비스를 이미 이용 중인 고령 장애인도 정책 가이드라인 부재로 인해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령 장애인 중 상당수는 노화로 인해 치매나 정신 행동 장애를 동반한다. 그러나 치매와 기존 장애 증상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복지 공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치매와 기존 장애를 구분하려면 고비용의 전문 검사와 진단이 필요하지만, 장애인 시설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정석왕 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치매를 앓는 고령 장애인을 위한 돌봄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며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로 구체적인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법 개정안은 65세 이후에도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2년 가까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활동 지원 서비스와 노인 장기 요양 보험의 병행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치매와 정신장애를 구분하고 이에 따른 전문적 지원을 제공할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65세 이후 노인 장기 요양 보험으로 전환된 고령 장애인이 줄어드는 급여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