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87)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주얼리 산업
정부 통계는 고작 1.7조원 시장 규모
큰 괴리는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곽상언·오세희 의원 법안 통과돼야

주얼리는 사랑의 징표로 자리 잡았다. 특정 계층만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주얼리 분야는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픽사베이
주얼리는 사랑의 징표로 자리 잡았다. 특정 계층만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주얼리 분야는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픽사베이

소비자 A씨는 3년 전 1캐럿대 다이아몬드 반지를 1000만원대에 구입했다. 얼마 전 반지 수리를 위해 방문했던 주얼리 가게에서 A씨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다이아몬드가 천연이 아닌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실험실에서 만든 인공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이었다. 당시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실제 가격은 천연 대비 1/3~1/5 수준. A씨는 제대로 사기를 당한 셈이다.

A씨는 항의를 위해 구입처(소매점)를 찾았다. 그러나 구입처에서는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의 차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천연 다이아몬드로 알고 팔았다는 얘기다. 그제야 소매점에서는 물건을 유통한 업자를 수소문했지만 업자는 이미 종적을 감춘 후였다. 업자는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해가 낮은 틈을 노려 천연으로 둔갑한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대량 수입해 한몫을 챙긴 것이었다.

순금 제품을 구입할 때, 시세보다 싸게 판매하는 곳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순금의 함량을 확인해야 하며 의심스러울 경우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 /픽사베이
순금 제품을 구입할 때, 시세보다 싸게 판매하는 곳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순금의 함량을 확인해야 하며 의심스러울 경우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 /픽사베이

어떤 산업이든 각 분야의 발전을 저해하는 이런 사기 행위에 대해 적절한 제재와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해당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면 말이다. 산업 지원과 보호 관리의 주체는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얼리 산업은 어떨까?

국내 주얼리 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기본적인 시각은 ‘사치품’ 혹은 ‘관심 밖’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주얼리는 사치성 소비재로 인식되어 규제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해외 주얼리 브랜드는 매년 국내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토종 주얼리 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반면에 국내 주얼리 시장 수요는 매년 늘어나고 있어 기형적인 형태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가 수입 주얼리를 고르는 모습 /연합뉴스
소비자가 수입 주얼리를 고르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주무 부서 역시 오락가락하고 있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섬유산업 패션디자인과에서, 2014년 디자인생활산업과로 변경됐다가 2018 무역진흥과로 다시 바뀌었다. 2020년에는 다시 엔지니어링디자인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중이다.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주얼리 산업 규모를 고작 1조7000억 시장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얼리를 생활소비재산업군으로 묶어서 관리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업계의 전문가들은 실상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이들은 국내 주얼리 산업 규모를 20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괴리가 커도 너무 큰 상황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주얼리 산업의 규모부터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부가 주얼리 분야를 산업으로 인정해야 한다. 지난 8월 19일 서울 종로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주얼리 산업의 기반 조성 및 지원에 관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중앙회장 출신의 민주당 오세희 의원은 ‘주얼리산업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 하나가 주얼리 산업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얼리 산업의 기반 조성 및 지원에 관한 법안’을 대표 발의한 곽상언 의원. 지난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종로주얼리포럼 2024’에 직접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류빈 기자
‘주얼리 산업의 기반 조성 및 지원에 관한 법안’을 대표 발의한 곽상언 의원. 지난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종로주얼리포럼 2024’에 직접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류빈 기자

예를 들어보자. 과거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프랑스, 일본, 미국 등에서 산 화장품이 최고의 인기 선물인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화장품은 해외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화장품법이 제정되고 정부 차원에서 집중 관리와 지원을 하면서 불량 화장품이 퇴출당했다. 자연히 국내산의 품질 향상이 뒤따랐다. 결국 한국산 화장품은 전 세계의 소비자까지 사로잡는데 이르렀다. 지금은 한류를 주도하고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 상품으로 우뚝 섰다.

우리나라 주얼리 분야도 한때 성업을 이루었던 적이 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롯데백화점 본점 2층 전체가 다이아몬드 거리였다. 토종 주얼리가 백화점의 주요 위치에 즐비했다. 백화점 인근의 주요 상권과 역세권을 중심으로 귀금속 소매점이 자리를 잡아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는 귀금속 소매상이 고물영업법에 의한 허가 대상이었다. 정부 차원의 관리를 받으며 도소매 업태 간 유통 질서가 잘 지켜졌다.

하지만 1994년부터 고물영업법이 폐지되면서 주얼리 소매상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아무나 귀금속을 판매하면서 유통 질서가 무너져 품질이 아닌 가격 경쟁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무자료 거래가 성행하면서 함량 미달 제품, 불량품이 판매되며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봤다. 결국 우리나라 귀금속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매력 있는 소비자는 해외 명품을 주로 구입하게 됐다.

물론 이런 상황의 일차적 책임은 무자료 거래의 관행을 지속하면서 음성화의 그늘을 만들어낸 업계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수입에서 유통 그리고 소비자 구매 단계까지 세금계산서를 주고받고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 사업자가 업계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일정 기간의 사업자 갱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정상적으로 성실하게 운영하는 주얼리 사업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내 주얼리 시장을 지킬 수 있다.

지난 8월 21일, '주얼리 산업 진흥법안' 입법공청회 현장. 오세희 의원(앞줄 가운데) 주최로 열린 입법공청회에는 산업계, 학계, 정부 부처 등 주얼리 산업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세희 의원실 제공
지난 8월 21일, '주얼리 산업 진흥법안' 입법공청회 현장. 오세희 의원(앞줄 가운데) 주최로 열린 입법공청회에는 산업계, 학계, 정부 부처 등 주얼리 산업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세희 의원실 제공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주얼리 산업의 기반 조성 및 지원에 관한 법안(곽상언 의원 대표 발의)'과 ‘주얼리 산업 진흥법안(오세희 의원 대표 발의)'이다. 두 법안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적절한 시기에 나온, 가뭄의 단비 같은 법안이라 말하고 싶다. 반드시 22대 국회에서 처리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주얼리 분야가 제도권으로부터 산업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다면, 소비자 A씨가 저가의 다이아몬드를 고가에 구입해 사기를 당하는 일, 보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무자격 판매자가 다이아몬드를 판매하는 행위, 사기를 목적으로 가짜를 천연으로 둔갑시키는 업자의 행위 등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제도가 정착되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곽상언 의원과 오세희 의원이 대표 발의하는 법안 제정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신뢰를 회복하고 주얼리 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한 가지 더 소박한 바람을 적어본다. 필자는 주얼리와 보석을 주제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포털이나 언론사에 글을 기고하기 위해서는 카테고리를 분류해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단 한 곳도 ‘주얼리’라는 카테고리가 없다. ‘패션’ 혹은 ‘유통’, 때로는 또 다른 카테고리 안에 필자의 글이 분류되어 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어 필자의 글을 ‘주얼리’라는 별도의 독립된 카테고리에 품게 되는 날이 온다면, K-주얼리도 화장품처럼 수출에서 효자, 효녀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