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개통이 대출 조건" 경제적 취약층 노린 신종 사기
대출 미끼로 접근··· 명의 도용 및 소액결제 피해 발생
신고 꺼리는 피해자들··· "처벌 우려와 보복 두려움 때문"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청년층을 노린 신종 사기인 ‘내구제 대출’은 피해자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한 후 이를 대포폰으로 판매하거나 소액결제에 악용해 범죄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막대한 채무와 법적 책임을 떠안고도 처벌 우려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챗GPT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청년층을 노린 신종 사기인 ‘내구제 대출’은 피해자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한 후 이를 대포폰으로 판매하거나 소액결제에 악용해 범죄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막대한 채무와 법적 책임을 떠안고도 처벌 우려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챗GPT

"제대로 당했어요. 기대출이 있는 상황에서 급전이 필요했어요. 대출 조회를 해봤는데 가능한 곳이 없었어요. 당장 다음달 카드값을 못내면 큰일나는 상황이었죠. SNS를 보다가 '여성전용대출' 상품 홍보글을 보고 이거라도 신청해야겠다 싶었어요. 전화를 했는데 이자가 4%대라면서 핸드폰을 개통하면 대출을 해주겠대요. 다른 곳에서 대출이 막혔으니 업소 콜센터 직원으로 잠시 등록하고 핸드폰을 개통한 후 4대보험 처리를 하면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대출은 커녕 제 명의로 총 3대의 핸드폰 개통처리만 되고 감감무소식이에요."

서울시 마포구에 거주하는 31세 여성 A씨는 얼마 전 SNS를 통해 '여성전용 대출'이라는 광고를 접했다. 이미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던 그는 신용등급이 낮아 추가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광고에 적힌 “신용등급 무관, 직장인 여성 우대”라는 문구에 혹해 연락을 시도하게 된다.

A씨에게 한 대부업자가 접근했다. 그는 A씨가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지 않아 대출이 막혔지만 자신들이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A씨를 우리 회사 콜센터 직원으로 등록한 뒤 4대 보험을 들어 대출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것. 이를 위해선 A씨의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번호만 만들고 바로 지워주겠다”고 약속했다.

피해자 A씨와 대부업자 카카오톡 대화 내용. A씨에게 핸드폰 개통을 유도하고 있는 대부업자. /독자제보
피해자 A씨와 대부업자 카카오톡 대화 내용. A씨에게 핸드폰 개통을 유도하고 있는 대부업자. /독자제보

의심을 품었지만 경제적 절박함에 대출을 실행한 A씨는 나중에 대출이 실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본인 명의로 총 3대의 휴대폰 번호가 개통된 사실을 알게 됐다. 대출이 아닌 사기였던 것이다.

통신사에서는 그 번호들로 발생한 연체된 통신요금과 할부금을 모두 A씨에게 청구했다. 결국 그녀는 돈을 빌리기는커녕 수백만 원의 채무와 명의도용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업자들은 A씨 명의의 핸드폰으로 수백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소액결제를 통해 구매한 후 되파는 식으로 이익을 남겼다. 

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A씨의 사례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내구제 대출'이라는 신종 사기 유형에 해당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대상으로 대출을 미끼로 접근한 뒤 휴대폰 개통을 조건으로 피해자의 명의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대출을 받는 대신 본인 명의의 다수 휴대폰이 개통된다. 통신 요금, 기기 할부금, 소액결제 등으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통된 휴대폰이 대포폰으로 사용되거나 유심칩이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팔려 또 다른 범죄에 연루될 위험도 있다​.

A씨의 명의로 세대의 핸드폰이 개통됐다. '내구제대출'은 개통된 피해자의 핸드폰으로 '보이스피싱' 등 다른 범죄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 또한 피해자의 핸드폰 명의로 소액결제를 통해 수백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하고 이를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대부 업자는 수익을 창출한다. /독자제보
A씨의 명의로 세대의 핸드폰이 개통됐다. '내구제대출'은 개통된 피해자의 핸드폰으로 '보이스피싱' 등 다른 범죄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 또한 피해자의 핸드폰 명의로 소액결제를 통해 수백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하고 이를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대부 업자는 수익을 창출한다. /독자제보

‘내구제 대출’이라는 명칭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최근 금융당국과 경찰이 주목하는 사기 유형 중 하나다. 이 방식은 대출 희망자에게 급전 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인 후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게 하고 이 휴대폰을 재판매하거나 소액결제에 활용해 업자들이 이익을 얻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업자들은 피해자의 신용 등급이 낮거나 직업 상태가 불안정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신용등급이 낮아도 대출 가능', '특별한 조건으로 대출 가능'과 같은 문구를 앞세워 피해자가 의심을 가지지 않도록 한다. 피해자가 휴대폰을 개통하고 나면 업자는 이를 중고 시장에 되팔거나, 대포폰으로 사용하게 하고 개통된 유심칩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기는 등의 방식으로 범죄 수익을 극대화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1만5910건이었던 대포폰 적발 건수는 2022년 5만3104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다수가 내구제대출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내구제 대출은 신고율도 낮다. 2020년 기준 광주청드림은행 자료에 따르면 내구제 대출 사기 상담자 중 경찰 신고 비율은 6%, 조사 인원 총 34명 중 2명뿐이다. 

피해자들이 내구제 대출 사기를 당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도 불법 행위에 연루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법상 휴대폰을 대출 조건으로 타인에게 양도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피해자들의 신고를 막는다는 것. 실제로 내구제 대출 사기에 연루된 피해자들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어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성현 금융범죄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내구제 대출 사기는 특히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대출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작은 미끼에도 쉽게 현혹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 개통을 요구하거나, 직장 등록 및 4대 보험 가입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 이것은 대출 사기의 신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이어 "피해자가 대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명의를 팔아넘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피해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가짜 대출 광고나 불법 대출 조건을 본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거나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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