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하철 곳곳 '여성 전용칸'
국내선 남녀 평등 논의 '들끓어'

일본 오사카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특정 시간대에만 운영되는 여성 전용 지하철 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퇴근 시간대의 혼잡한 지하철에서 성추행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성 전용칸이 마련됐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이 제도는 여성 승객을 성추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000년대 초 도입됐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약 35년 거주하고 있는 윤 모씨(남·55세)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 지하철에는 여성 전용 차량이 도입돼 있다"며 "주로 성범죄 등을 방지해 여성이 안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평일 통근·통학 러시아워에 운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이어 "여성 외에도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분과 그 보호자도 승차가 가능하다. 다만 운행 상황에 따라서 여성 전용 차량의 설정이 변경되기도 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오사카를 포함한 일본의 주요 도시에서는 여성 전용 지하철 칸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 사이에선 사회적 안전망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성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성추행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오사카역에서 만난 한 여성 승객은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은 너무 혼잡해서 성추행 같은 일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여성 전용칸이 있어서 훨씬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15년째 오사카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40세 여성 정 모씨도 본지에 "여성 전용칸을 가끔 이용한다. 실제로 성범죄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심해서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다만 유모차에 대한 인식 등 여성 전용칸이 오히려 더 불편할 때도 있다. 조금이라도 접촉이 있으면 더 예민한 느낌이다. 유모차를 끌 경우엔 일반 차량의 유모차 전용 구역을 이용하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서울,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여성 전용칸 도입이 시도된 바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부산도시철도가 국내 최초로 '여성 배려 칸'을 시행했다. 출퇴근 시간인 오전 7시~9시와 오후 6시~8시에 운행하는 전동차 8량 가운데 한량은 여성만 탈 수 있게 장려했다.
다만 당시 온라인상에서 일부 남성들은 여성 전용칸이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지하철 내에서 성별에 따라 칸을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성차별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여성 전용칸의 도입이 남녀 평등을 해치는지, 아니면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졌다.
지난 2019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남성 전용칸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청원에 동참한 일부 네티즌들은 "제발 남성 전용칸을 만들어서 여자들에게 피해 안 주게 해주세요"라며 동의 댓글을 남겼다. 일부 네티즌들은 "여성 전용칸이 있으면 남성 전용칸도 있어야지, 왜 없냐"라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여성 전용칸에 대한 반응이 다른 이유를 두고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에서는 성추행 문제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 여성 전용칸이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국은 남녀 평등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더 높아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성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
고바야시 히로유키 일본 사회복지연구소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일본에서는 성추행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여성 전용칸은 필수적인 안전 조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남녀 평등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논란이 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