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에 300억원 맡긴 시점 1991년
노소영은 '신혼 초 지원금'이라고 주장
태평양證 인수에 쓰인 노태우 비자금
최태원 재산 형성 기여도가 최대 관건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을 뒤집은 결정타는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이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이 SK그룹에 흘러 들어가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이전까지 노 관장 측은 SK그룹이 SK텔레콤을 인수하는데 노 전 대통령의 지원이 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에서 두 차례나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포기했고 통신사업권을 딴 건 김영삼 정부 때였다는 논리로 이를 방어해왔다. SK텔레콤 인수에 노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자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들고 나왔다. 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에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노 관장 측은 "김옥숙 여사가 신혼 초기부터 1998년 4월 1일까지 최 회장에게 32억원에 달하는 금전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이혼 소송 시 특유재산(일방이 결혼 전 가지고 있거나 상속 받은 것)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최 회장은 자신의 SK 계열사 지분이 최종현 창업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으로 취득한 것이라며 '특유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반면 노 관장 측은 결혼 기간이 오래된 부부의 경우 증여·상속받은 재산도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고 맞서왔다. 배우자가 특유재산 유지 및 증식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재산 분할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지난 1998년 4월 1일 증여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준 돈을 사용하는 등 노태우 대통령과 김옥숙 여사가 공동 재산 형성 과정에서 상당한 금전적인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총 4조115억원가량에 이르는 재산 총액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 비율로 현금 분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영삼 정부서 국고로 환수하지 못한
SK그룹으로 흘러들어간 비자금 포착
최 서방에게 맡긴 돈 32억원은 지원금?
이번 고등법원 판결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인정한 부분이다. 1991년 무렵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 회장에게 전달됐고, 최 회장은 이를 담보하기 위해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넸다. 다만 김옥숙 여사는 이를 '맡긴 돈'이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정황은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1998년 4월 경 작성 김옥숙 여사 메모엔 '선경 300억’, '최상무 32억' 항목이 적혀 있고 757억원이 총합으로 돼 있다. 1999년 2월 12일 작성된 메모(686억으로 줄어듬)에서도 '선경 300억'과 '최서방 32억'이라고 표시돼 '최상무'와 '최서방'이 최태원 회장임을 가늠케 한다.
김 여사 메모에 적힌 노재우·이병기 등 다른 사람들 이름의 비자금은 김영삼 정부 시절 대부분 환수됐지만 SK그룹으로 흘러들어간 3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대법원까지 가게 된 이번 소송도 '최상무' '최서방' 이름과 함께 적힌 32억원의 성격에 따라 희비가 좌우될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축적이 취임 직전인 1988년 1월부터 시작됐고 재임 기간 꾸준히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집권 기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포기하고 김영삼 정부 시절 매물로 나온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SK그룹 입장에선 이번 판결이 억울한 측면이 있다. 특히 최서방에게 전달된 32억원이 맡긴돈이라면 최 회장 재산 형성에 기여한 지원금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1984년부터 통신사업 준비해온 SK그룹
최태원 유학시키며 美 경영기획실 설치
盧사돈이란 이유로 사업권 두차례 포기
1990년 7월 체신부는 통신사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을 실시했다. 당시 이통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었고,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많은 기업들이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앞서 선경은 1984년부터 정보통신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미국에 경영기획실을 설치해 시카고대에서 유학을 마친 최 회장을 미주경영기획실 부장으로 재계에 데뷔시켰다. 그룹사의 치밀한 준비 덕에 계열사 대한텔레콤이 입찰에 참가해 총점 8127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로 1차 관문을 통과했지만 최태원 회장과 노 관장이 부부(1988년 9월 13일 결혼)란 이유로 특혜 의혹과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체신부는 최종 결과를 발표하면서 세부 점수와 신청서 사본, 심사위원의 명단까지 모두 공개했으나 여론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1992년 8월 말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되었으나 물의가 커 국민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1년 뒤 김영삼 정부가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계획을 밝히는 동시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넘기자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회장으로선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경이 사업권을 따내면 재계의 화목이 깨지고 또 특혜시비가 붙을 것"이라고 판단한 최 회장은 결국 1994년 2월 제2이동통신 사업권 포기를 밝혔다. 전경련은 이후 포항제철, 코오롱, 금호그룹을 대상으로 합동 면접 심사를 진행해 포항제철을 1대 주주 주도사업자로 결정하고 코오롱을 2대 주주 제2사업자로 선정해 체신부에 통보했다.

노태우도 이동통신 논란에 불똥 맞아
SK텔레콤, 김영삼 정부 민영화 결과
1990년 7월 통신사업 구조조정 방안 발표와 함께 노태우 정권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한 불똥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도 튀었다. 부정적 여론이 대선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노발대발하던 김영삼 후보에 등 떠밀린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9월 18일 자신이 만든 민자당을 탈당한 뒤 거국내각을 구성해 대선을 치러야 했다.
제2이동통신을 포기한 선경은 김영삼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이 매물로 나오자 인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1994년 주식 경쟁입찰에 참여한 선경은 주당 8만원 하던 주식을 33만5000원에 사들였다. 왜 그렇게 비싸게 사느냐며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는 임원들에게 최 전 회장은 "우리가 얼마나 이동통신사업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나. 회사의 가치는 더욱 키워가면 되잖아"라고 다독였다고 한다.
재판부는 최종현 회장에게 제공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은 최 회장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봤다. 1991년 12월 12일께 최 회장 명의 금융계좌에 500억원 이상의 금원이 입금됐고 이후 태평양증권 인수자금이 지급되는 과정에서 1684억원 이상이 한꺼번에 출금됐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자신의 재산형성에 최종현 전 회장의 기여를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하는 이상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기여도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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