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통위원 서영경 기자간담회
"중앙은행, 실물 경제 이해 늘려야"
금리 조정 후 인플레 파급 시차 '뚝'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26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팬데믹 4년간 통화정책을 주관하며 깨달은 점을 발표했다. /한국은행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26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팬데믹 4년간 통화정책을 주관하며 깨달은 점을 발표했다. /한국은행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보건 위기'는 각국의 통화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은행 역시 코로나19 발발 직후 초저금리로 전환하고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에 경기는 빠르게 회복됐으나 예상보다 길어진 팬데믹으로 수요와 공급 간의 회복 시차가 커져 인플레이션이 심화했다.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5월부터 지금까지 국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영경 금융통화위원은 위기 대응을 위한 통화정책 수립에는 산업과 고용 등 미시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포함돼야 한다고 봤다.

2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영경 금통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 '팬데믹 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통화정책 경험과 과제'를 열고 4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찰을 발표했다.

서 위원은 4년간의 보건 위기 시절 통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중앙은행이 산업 또는 고용과 같은 미시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확대해야 함을 깨달았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성장과 물가 등 거시경제변수를 중시해 왔다.

서 위원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은 국제 공급망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서 위원은 "중국의 이슈와 글로벌 밸류 체인 등이 한국의 통화정책 및 중립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의 경우 베이비부머 세대와 여성을 중심으로 고용 공급이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향후 저출생과 고령화 가속화로 필연적 공급 둔화를 겪을 전망이다.

서 위원은 통화정책 수립 시 실물 경제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서 위원은 통화정책 수립 시 실물 경제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는 단기적 '대응'뿐만 아니라 장기적 '방향성(경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서 위원은 "인구 구조 변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에 대한 이해는 통화정책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라며 "구조 개혁에 대한 정책 제언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리 정책의 파급 시차가 줄어들었다는 점 역시 통화정책 마련 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은행 경제모형실의 분석에 따르면 10년 전 5분기였던 GDP 최대 파급 시차는 종전 4분기로 줄었다. 인플레이션 최대 파급 시차는 8분기에서 4분기 정도로 짧아졌다.

파급 시차가 단축된 이유는 정책 소통의 확대, 환율 변동 용인, 실물 대비 금융의 빠른 성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팬데믹 기간 중 누적된 민간 부채로도 설명된다. 서 위원은 "통화 정책의 파급 시차가 과거보다 짧아진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통화정책은 이런 변화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서 위원은 △유연한 정책 대응 △대차대조표 정책 확장 △금융 안정 고려 △환율의 대외 충격 흡수 기능 확대 △소통 강화 등을 강조했다.

금통위, 여성·산업계 출신 모셔 다양성 제고 必
'고용 안정'이 통화정책 목표? "바람직하지 않아"

발표가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4년간 금통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는가'를 묻자 서 위원은 실물 경제 이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서 위원은 "우리(한국은행)는 아무래도 금융 쪽을 중점적으로 보게 되는데 금융은 실물의 거울"이라며 "실물은 먼저, 더 근본적으로 변화를 끌고 가는 부분이고 금융은 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7명의 금통위원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서 위원은 오는 4월 20일로 임기가 끝난다. 서 위원이 떠나면 금통위는 모두 남성 위원으로 구성된다. 서 위원은 '(떠나신 뒤에도) 여성 금통위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다양성 제고 측면에서 여성 금통위원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일·가정 양립도, 커리어에 좋은 기회를 얻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 근로자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도전하면 좋겠다"며 "고위직 여성이 많아진다면 (다음 세대의) 롤모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서 위원은 여성 최초로 한국은행 임원이 돼 '유리천장을 깼다'고 평가받았던 바 있다.

서 위원은 여성을 비롯한 산업계 출신 인사 영입으로 금통위 구성이 다양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서 위원은 여성을 비롯한 산업계 출신 인사 영입으로 금통위 구성이 다양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서 위원은 "(여성 외에도 금통위에) 산업계에 오래 몸담았던 분이 오신다면 균형적인 의사결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금통위 구성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서 위원은 이날 한은의 통화정책 목표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자는 내용으로 발의된 한은법 개정안에 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서 위원은 "국내 노동시장은 구조적이고 제도적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것을 통화정책 목표에 명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가지고 있는 수단에 비해 너무 많은 목표를 가지면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위원은 1963년생으로 한국은행에 1988년 입행해 2013년 부총재보에 올랐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2016년)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2018년)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2020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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