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신설되는 가요 시상식
티켓값은 '호화' 공연 질은 '글쎄'
韓 팬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

수익만 좇아 우후죽순 신설되는 가요 시상식에 K-POP 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21일 엔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언론사가 주최하는 국내외 케이팝 시상식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들은 고가의 티켓값에, 아티스트는 과도한 참석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사들이 시상식을 빙자한 공연 수익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이다.
지난 2일 케이팝 팬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텅 빈 해외 공연장 사진이 게시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국내 S 언론사가 태국에서 개최한 '서울가요대상' 시상식 객석이 텅텅 빈 것이다. 시상식 장소는 태국 최대 규모인 방콕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으로 총 5만명 수용이 가능한 규모다. 앞서 해당 장소에서 만원을 기록했던 BTS, 블랙핑크 등 최정상급 아티스트 콘서트와 대조를 이뤘다. 국내 팬들 사이에선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며 주최 측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5일에는 국내 C 언론사가 추진하는 뮤직어워즈가 돌연 연기되기도 했다. 해당 시상식도 20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불과 2주 앞두고 전격 취소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연 취소 원인을 '현지에서 입장권이 많이 팔리지 않아서'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또 다른 D 언론사도 오는 2월 중순을 목표로 추진해 오던 케이팝 시상식을 3월 중순으로 재조율하는 등 케이팝 시상식이 연이어 파행을 연출하면서 무분별한 시상식의 난립이 이제 막 태동 중인 케이팝을 망가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텅 빈 해외 공연장 사진이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할 경우 케이팝에 대한 이미지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사들이 해외에서 잇따라 케이팝 시상식을 여는 목적은 돈벌이라고 분석된다. 시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아티스트들을 무대에 세운 뒤 고가의 입장권을 팔아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다.
언론사의 '시상식 사업'의 문제점으로 크게 네 가지가 언급된다. 먼저 'K-POP 위기론'을 불 지필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사 주최 시상식은 특정 팬덤이 열광하며 티켓을 구매하는 기존 케이팝 흥행 문법과는 달리 톱티어(최상급) 아티스트는 두세 곡 정도만 선보이고, 무명이나 신인그룹이 대거 무대에 오르는 구성이다. 티켓 파워 확보가 안 된다는 의미다. 엔터 업계 관계자는 "케이팝과 팬의 관계를 간과한 언론사들이 많은 아티스트를 초청하면 무조건 표가 팔릴 것으로 생각하고 시상식을 여는 것은 엔터 산업의 속성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상의 공정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서울가요대상의 경우 ‘슴(SM)가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SM 소속 가수들만 주로 출연해 이들에게만 주요 상을 주는 일이 반복됐다. 올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는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골든하이브’라는 이름이 생기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역시 수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엔터사의 속성을 무시해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을 목적으로 하면서 질이 낮은 공연과 필요 이상으로 비싼 티켓도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사들이 국내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경우 티켓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책정할 수 없지만 해외 시상식은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티켓 가격을 고가로 책정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론사 C사의 경우 가장 비싼 좌석을 6900바트(약 26만원)로 책정했다. S사의 최고가 티켓도 6800바트로 유사한 수준이다. 1인당 연간 소득이 한화 기준 1000만원 남짓한 태국 현지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가격 책정으로 현지 팬들의 반감만 가중시켰다고 분석된다. S사 시상식 사회를 맡은 그룹 갓세븐 멤버 뱀뱀은 행사 직후 "내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음향 시스템이었다"고 개인 SNS에 올리는 등 낮은 공연 품질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무분별한 시상식 난립은 엔터사에도 큰 부담이자 아티스트 활동에 제약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아티스트가 출연하지 않으면 티켓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엔터사에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기 일쑤다. 한 엔터 업계 관계자는 "모든 엔터사들이 출연 강요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주최 측이 언론사여서 불평 한마디 못 하고 있다"며 "수시로 변하는 시상식 일정에 무조건 맞춰 나오라고 막무가내 요구를 받지만 톱티어 아티스트일수록 미리 계획된 글로벌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올해 언론사들의 '수익성만 좇는 시상식 사업'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각 언론사가 준비 중인 시상식이 모두 개최된다면 15~20개의 시상식이 열릴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엔터 업계 관계자는 "언론사들이 엔터 비즈니스의 본질을 간과한 채 눈앞의 수익성만 바라보고 무분별하게 시상식에 뛰어들고 있다"며 "이제 막 태동을 시작한 케이팝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