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비 혼인율 41%↓
간간이 보이는 청년 부부들
"존중·신뢰 기반으로 결혼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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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청세)] 이번 편은 고려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김은아 씨(27)는 2020년 대학생이었을 무렵 만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된 남자 친구로부터 대뜸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은 언젠가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직장인인 남자 친구와 달리 아직 어린 그에게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나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말했던 그는 졸업 후 남자 친구와 헬스트레이너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동거를 시작했다. 직장에서 가정까지 24시간을 붙어 살면서 일과 집안일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상 신혼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자 친구를 '대화를 통해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년의 동거 끝에 둘은 내년인 2024년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김은아 씨는 남자 친구를 이미 남편이라고 부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연간 혼인 건수는 19만1690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약 41% 감소했고, 평균 초혼 연령도 30대 초반으로 상승했다. 그래도 주변에 결혼하는 청년들이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청년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오늘날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했는지 물어보았다.
스물다섯 초등교사인 권보민 씨는 올해 3월에 만난 남자 친구 왕현철 씨(31)에게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과거의 연애로 인해 심적으로 지친 상태였고 빨리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둘은 서로 결혼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레 아이가 생기면서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개의치 않았던 시댁과 달리 권보민 씨의 부모는 아직 어린 그의 갑작스러운 결혼을 반대했다. 아버지와는 한 달간 연락이 끊겼다. 그는 '앞으로 부모님과 절연하면 어떡하지'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어느 날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마음을 돌리고자 결심한 아버지는 1박 2일의 여행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딸의 진심을 듣고 선택을 받아들였다. 6개월의 연애와 2개월의 짧은 결혼 준비 끝에 둘은 지난 9월 10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신혼 생활 없이 모든 게 아이에게 맞춰진 결혼생활을 다소 우려하기도 했으나 남편 왕씨는 그를 향해 "워낙 강한 사람이니까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조은솔 씨(30)는 남편과 5년 동안의 연애에서도 크게 싸우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올해 5월 결혼 후 반년간 동거를 하면서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일로 남편과 사소한 마찰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를 통해 생활방식을 맞춰갔다.
서로 집안일이 정말 하기 싫을 때는 보드게임을 통해 진 사람이 하기도 하면서 한창인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녀는 자녀 계획을 미루면서도 "내가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면 결혼하는 게 맞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에 결혼한 황성진 씨(32)는 자신이 결혼한 이유를 '편안함'에서 찾는다. 주위 친구들이 애인과 설렘이 없어지고 지나치게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며 헤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지만 그는 설렘이 없어도 함께 있는 게 편안하기에 내가 이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지금도 와이프 손잡고 가거든요. 와이프 손잡고 걷고 같이 있으면 그냥 무조건 옆에 누워서 같이 있으려 하고. 이러다가 안 하면 괜히 또 허전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신혼 생활을 꽤 즐겼다고 생각하면서 슬슬 아이가 있으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과거의 그는 자녀가 생기면 남자가 부양 부담을 대부분 짊어지고 돈 버는 기계가 된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이제는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며 책임감을 보이기도 했다.
김태화 씨(32)는 3년 전 소개팅으로 주위 친구들보다 비교적 늦게 첫 연애를 시작했지만 지난 4월 가장 빨리 결혼했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스스로 혼자만의 능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표현하며 "지금도 아내가 자기하고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저도 대답은 못 해요. 그런데 대답은 못 해도 그거 하나는 생각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만났던 청년들은 존중과 신뢰를 바탕에 두고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배우자와 함께 누리는 안정감을 결혼 결심의 이유로 꼽았다.
다들 내 집 마련, 육아 등 앞으로 겪게 될 현실적 문제에 대해 고민이 있었고 결혼 준비에도 적잖은 돈이 들었지만 각자 추구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생 김하민 씨(24)는 "멜로드라마나 사랑 노래가 흥하는 것을 보면 청년들이 사랑을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과 제도가 청년들을 고립으로 떠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실업률, 저출산, 고령화 등의 사회 지표가 보여주듯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은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민이다. 다만 혼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취미활동이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그들에게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경험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최인범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